brunch

좁은 문

2025년 01월 31일 금요일

by 손영호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여기서 좁은 길이란 삶에서 마주하는 갈림길에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길을 의미할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삶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갈림길에서 좁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육체적(뇌) 본능을 넘어야 하는 대단한 인내와 의지가 요구되는 그런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뇌는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연적 본능을 가지고 있으나, 그 본능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의식과 사고력 그리고 자유의지가 있어 가능하다.


본능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들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의지력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현상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강제성은 없지만 타인의 지탄을 받을 수 있는 도덕이나 관습에 어긋나는 행위도 그렇다.


그러나 사회규범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신념이나 가치관은 그 어떤 강제성이 없는 개인적인 자율성에 따르는 것이기에 지켜나가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용서가 그렇다.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거나 욕을 먹지도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설사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생각대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발생하면 자연적인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용서는 강한 신념과 의지를 기반으로 한 개인의 선택이며 실행하기 어려운 좁은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그 좁은 길은 어떻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인가?


분명 사람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생각과 방법이 다를 것이다. 나는 아직 천국이나 사후의 보상적 측면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많은 힘을 얻는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이어진다고 하셨다. 그 생명이란 영생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생명이란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특성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 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뇌과학적으로 본능을 역행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데 있어 보상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그 보상으로 포도나무의 열매를 생각한다. 자신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이 느껴지고, 그 과정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바로 그 현실이 나에게 보상인 것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 하나가 흔들리는 나의 내면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좁은 길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이다. 각자 가는 방법이 다를 뿐 누구나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 /

Robert Frost(로버트 프로스트)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숲 속에 두 갈래길에서)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나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을 택했다)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그리고 그 것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