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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苦難)을 대하는 자세

2025년 04월 02일 수요일

by 손영호

사람은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한다. 감기처럼 잠시 머무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 끝이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 그런 어려움들도 있다. 어려움이 장기화되고 평온과 행복이 일상에서 멀어지게 되면, 그 어려움은 곧 삶의 고난이 된다. 누구나 고난을 원하지 않지만 고난은 삶 곳곳에 늘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탈출구가 눈앞에 보인다면, 그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은 점점 약화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객관적으로 절망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절망은 사람을 객관성에서 멀어지게 하기에, 그 상황에 직접 들어가 보기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고난에 대한 자세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것은 사람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고난은 누구나 겪는다. 물론 고난의 형태와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 큰 고난을 겪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고난은 있다. 즉 고난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봐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에서 벗어나 다시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특별하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고난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난을 대하는 자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고난의 객관화이다. 나의 고난이 누군가에게는 동일한 고난이 될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난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고난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해지면 고난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 고난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큼 어깨가 가벼워진다. 이런 고난의 객관화에는 자신의 직간접 경험은 물론 독서를 통한 역사 속 인류의 삶에 대한 조망 등이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는 믿음이다. 현시점에서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옳은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다 보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며 삶 전체로 시야를 넓히고,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며 희망을 갖게 되면 길은 반드시 열리게 되어있다.


시간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다. 당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객관화나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시간은 일을 한다. 시간은 사람의 내면을 다지고 사람을 조금씩 일어서게 한다.


다음은 실행이다. 생각과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해야 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정리가 되면 무엇이 되었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물론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행동하다 보면 길이 열리고,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열린다. 그렇게 실행을 지속하다 보면 삶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삶의 끝자락에 서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끝자락에서 삶에 담긴 모든 것들을 조망하며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 세상 일은 그 어떤 것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즉 자신의 삶이 어떤 것들로 채워질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가봐야 하고, 그 끝에서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


그 삶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고난은 고난이 아닌 삶의 선물이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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