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4일 수요일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대접받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값을 지불하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비스 또한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렇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접하기보다는 대접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진심 어린 대접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울러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다면, 역으로 내가 사람들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진심 어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대접하는 삶을 살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권리’라는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그럴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 권리라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나이를 먹으면 사회적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인가? 집에 돈을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서 대접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인가? 회사에서 직위가 올라가면 직원들로부터 대접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인가? 돈을 지불하면 그 업체의 종업원들로부터 대접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인가?
대접받을 권리,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건, 내가 어떤 위치에 있건, 내가 어떤 값을 치렀건,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결국 대접받고 싶다면 머릿속에서 권리의식을 지우고 내가 먼저 대접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는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보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 등 수많은 유익을 맛볼 수 있다. 반면,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유익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접하며 사는 삶은 표면적으로 손해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하며 삶이 풍요로워진다.
인생 후반,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대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훌륭한 삶, 멋진 삶,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