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우리는 모두 아버지가 있다. 내가 모르는.

by 현장감수성

빨치산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영어로는 Partisan, 본래 러시아어고 그 뿌리는 프랑스어인 Parti(당파, 영어는 Party)에서 비롯한 말이다. 깡패가 영어(Gang)와 한자어(牌 패거리)가 만나 탄생한 말이지만 마치 순우리말인듯 쓰이는 것처럼 빨치산도 얼핏 들으면 순 우리말 같지만 사실은 우리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빨치산은 빨갱이와 더불어 한 때 한반도에서 [일본 순사]보다 더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말이었다. (덕분에 그 추억팔이(?)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책이 나온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님의 추천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베스트셀러. 작품 속에서 독자고 보는 고아리의 시간은 대략 사나흘 남짓. 하지만 그 사나흘 속에 마흔 넘은 딸조차 모르던 아버지의 수십년 인생을 보여준다. 곳곳에 블랙코미디스러운 유머도 심어놓아서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는,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담겨있고 달콤쌉싸름한 맛이 나는 그런 소설이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작가의 삶에서 우러난 재료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처럼, 이 작품도 첫 문장부터 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중략) 물론 본인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이는 고상덕. 1948년부터 52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고 남은 인생을 몽땅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아버지의 장례를 그 딸 아리(백아산에서 '아'를, 지리산에서 '리'를 따서 이름이 아리다. 백아산은 아빠가 빨치산으로 살았던 곳이고 지리산은 엄마가 빨치산으로 살았던 곳.)가 마을 사람들의 손을 빌려 치르는 이야기다. 친척이 오고 손님이 오고 그들에게 먹일 음식을 차려내고. 그와중에 아리가 나고 자라며 겪은이야기도 하나씩 나온다. 아빠와 놀러간 추억, 사촌오빠를 마중나가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억, 몰래 담배피우는걸 들켜버린 사건 등. 연좌제가 당연하던 시절, 아버지와 절연하고 수십년째 술만 마시는 작은아버지의 이야기도 딸인 아리 못지 않게 소설에서 큰 기둥을 차지한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무척 재밌게 읽고, 태백산맥을 아주 인상깊게 본 나로서는 이 작품을 언젠가 읽게 되었을 것이다. 고상덕은 비록 작품의 첫문장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독자들은 살아생전 그를 만날 수 있다. 혁명가이자 빨치산이고 사회주의자이면서 유물론자인 그가 대한민국을 살아내던 시절을. 그는 고아리의 추억속에, 동네 이웃들의 기억속에, 그와 인연이 닿아 하나둘씩 장례식에 찾아오는 (오죽허믄 고상덕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던) 민중들의 마음속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이 작품에도 유독 기억에 남아 기록해두고 싶은 문장들이 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 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친인척이 구례에 있고, 칠십년지기 친구들이 구례에 있다.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아니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기둥이었을 뿐이다. 기둥이 잘려도 나무는 산다.

태백산맥의 에필로그 같은 책. 팔십 먹은 하대치가 결국 세상을 뜨고 그 딸이 강렬하고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아버지의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주는 듯한 소설. 고아리의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고아리는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에게 이 말 한 번 들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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