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뗴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학교는(혹은 교사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차갑다는 말처럼 무척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특히, 생활부장을 몇 년 해보면 이 말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들릴 때가 있다.
1. 교사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하는데, 학생이 스스로 학습권을 포기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 수업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10~15분 뒤에 교실로 돌아오는 학생이 있다. 아무리 쉬는 시간에 가라고 해도, 심지어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어김없이 수업 중에 손을 들고 화캉스를 떠난다. 다른 학생들이 볼멘 소리로 "선생님, 쟤 공부하기 싫어서 저러는 거에요." "쟤 작년에도 맨날 저랬어요." "화장실가서 핸드폰 하다 와요." 화장실 말고 보건실을 애용(혹은 악용)하는 학생도 있다.
교사는 어떻게 지도해야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인권침해를 하지 않는 것인가? 매우 어렵다.
2. 학폭 신고가 들어와서 사안 조사를 해야 하는데 학습권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단다.
-쉬는 시간에 사안 조사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현장감수성 제로 수준의 인권감수성이다. 쉬는 시간 10분이면 어느정도 조사할 수 있지 않느냐고? 조사 담당자인 나도 수업이 있다. 수업 마치고 해당 학생 교실 찾아가서 만나고 다시 가까운 학년 연구실에 도착하면 이미 2~3분은 지나있다. 7분이면 그래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나 이 사안조사 마치면 바로 다시 수업하러 가야 한다. 이게 현장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 학생이 조사에 순순히 협조한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담당교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생존본능이 즉각 발동한다. 문제는 신고 후 첫 사안조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첫 사안 조사에서 관련 학생의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3. 학폭신고로 분리조치 시켜도 학습권 보장은 여전히 학교의 몫이다.
-현행 학폭법은 그 정의부터 범위, 절차까지 고쳐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분리조치'. 학폭 신고를 받으면 담당자는 피해추정 관련학생과 보호자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분리조치 시행을 원하시냐고. 여기에 동의하기면 하면 최대 5일(주말 포함 7일)까지 가해학생으로 지목당한 학생은 교실에 들어올 수 없다. 학교 안에 별도의 공간(보통 교무실)에서 따로 공부해야 하는데 사실상 거의 자율학습이다. 담임교사는 이 기간 동안 필요한 학습자료를 챙겨줘야 하는 새로운 업무(?)가 발생한다. 아무리 학폭 가해학생으로 지목받았어도 여전히 학교에서 그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줘야 하기에.
(사실 이 절차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정말 정말 악용할 소지가 많다. 만일 손톱깎이 친구가 발톱깎이 친구를 싫어해서 '아니면 말고'식의 학폭 신고를 하고 분리조치를 원하면 해야 한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틀 뒤면 현장체험학습이네? 발톱깎이 친구는 현장체험학습을 갈 수 있을까? 못 간다. 체육대회 행사를 하네? 못 한다. 열받은 발톱깎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맞신고 들어간다. 업무담당자는 절차와 서류에 파묻혀 수업할 때 목소리도 안 나온다)
4. 출석정지 학생도 마찬가지다.
-가해학생으로 확정되고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출석정지 조치를 내려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위탁교육, 가정학습, 학교내 별도 공간에서 학습 이렇게 3가지 중 하나로 진행한다. 여전히 학생의 학습권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