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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학교폭력으로 무너질 것이다 -1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by 현장감수성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된다. 이 문장에 절대다수가 찬성할 것입니다.

음주 운전은 예비 살인과 다름없다. 이 문장도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입니다.

음주 운전자는 사형 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어떨까요?


음주 운전을 예비 살인에 빗대는 것에는 많은 이가 큰 무리 없이 동의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음주 운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와 같이 처벌해야 한다는 문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장을 놓고 의미있는 토론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정말 현실에 맞는 정책을 만들기 위한 토론을 하고 싶다면 질문이나 명제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자는 사형 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해야 한다." 이렇게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는 본인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납치당해 15년간 감금생활을 하게 됩니다. 납치한 범인은 오대수의 고등학교 동창생의 남동생 이우진(유지태). 오대수는 자신을 15년이나 가두고 삼시 세끼 군만두만 먹게 만든 장본인을 만나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이우진은 이렇게 답합니다. “모래알갱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고요. 지금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이 꼭 이렇습니다.


지름 3미리짜리 모래 알갱이에 머리를 맞으면 어떨까요? 아마 살짝 아플 것입니다. 그렇다면 3미리가 아닌 3미터 마윗덩어리에 머리를 맞으면? 아마 잠깐 아플 것입니다. 얼마 못 가 그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모래알갱이와 바윗덩어리는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지만, 이 두 행위를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래알갱이도 바윗덩어리를 새로운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맞았을 때 얼마나 아프고 큰 피해를 입히는지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물에 넣었을 때 뜨냐 가라앉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기준 앞에서는 모래알갱이와 바윗덩어리의 차이는 사라집니다.


‘모래알 같은 학교폭력이건, 바윗덩어리 같은 학교폭력이건 폭력은 폭력이다.’ 17년 차 초등교사이자, 1-6까지 모든 학년 담임을 맡아봤고, 1년 이상 근무했던 모든 학교에서 생활-학폭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학교폭력이 결국 공교육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위기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학교폭력을 정의하고 조사해서 처리하여 조치를 하면 안 됩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2년에 걸쳐 다음과 같은 잘못된 잠재적 교육과정을 학습하게 됩니다.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고 끝내는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또래 집단에서 오는 긍정적 영향은 최소로, 부정적 영향은 최대가 됩니다.

공정에 대한 비틀린 기준과 상식을 갖게 됩니다.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할수록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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