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 작가는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에서 이런 예시를 들었습니다.
신뢰 자본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열차표 검표입니다. 어느 순간 서울역에 검표원이 사라졌어요. 개찰구는 그냥 열려 있습니다. 원래는 검표원이 개찰구에서 손님들이 내미는 기차표에 펀칭기로 구멍을 냈거든요. 열차 출발 시간에 맞춰 문이 열리고 줄을 지어 들어가다 짐을 내려놓고 기차표를 꺼냈던 기억이 있는데요. 요즘은 그냥 아무 때나 빈손으로 쓱 들어갑니다. 시간도 단축되고 여러모로 편리해졌어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 신뢰 자본이 쌓였고요, 다른 하나는 IT 기술입니다. 지금도 검표원은 있어요. 이분들 손에 있는 작은 단말기가 현재 객차에서 안 팔린 좌석이 어딘지를 알려줍니다. 검표원은 그곳에 앉은 사람에게만 조용히 표를 요구합니다. 검표는 하지 않는 대신,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10배에서 30배의 벌금을 물립니다. 타는 건 자유지만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호되게 벌금을 내요. 예전의 시스템이 몇 명의 무임승차자를 잡기 위해 모든 승객을 불편하게 했다면, 새 방식은 대부분의 승객을 아주 편하게 하는 대신에, 잡힌 무임승차자에게는 높은 비용을 치르게 합니다. 전수 검표를 하느라 생기던 개찰구의 길게 늘어선 줄도, 개찰하는 데 들던 시간과 인건비도 비할 바 없이 줄었어요.
정리해볼게요. 서울역에서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잡기 위해 모든 승객의 표를 확인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일단 다 기차에 태운 뒤, 점검을 통해 걸린 무임승차자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 즉, 표 값의 10배에서 30배에 달하는 벌금을 매기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최악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두의 표를 일일이 검사하며 느리고 번거롭게 기차에 태우고 적발한 무임승차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이 지금 대한민국 모든 학교의 학교폭력 처리 방식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은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오랫동안 지속해온 큰 사건의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담임교사가 관련 학생들 이야기 들어보고 시시비비를 가려 반성-사과-화해로 가면 자칫 큰 사건을 은폐, 축소할 가능성이 0%가 아니다. 모래알갱이건 바윗덩어리건 물에 가라앉는건 똑같기 때문에 모든 사안을 일일이 학교폭력 전담기구 혹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빠르면 2주 길면 2달에 걸쳐 조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련 학생을 가장 잘 아는(특히, 초등의 경우) 담임교사는 어떤 의견도 제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중에 민원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목격한 담임교사도, 목격자와 당사자의 진술을 모두 확인한 전담기구나 전담조사관도 해당 사안을 학교폭력이 아닌 단순 갈등이나 실수에서 비롯한 사고로 판단할 수 없다. 모든 결정권은 당사자측 즉, 학생과 보호자에게 있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면죄부는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요? 가해행위를 했다고 지목당한 학생과 보호자는 자신에게 내려질 조치를 줄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수백 쪽에 달하는 매뉴얼의 절차를 어긴 부분은 없는지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교폭력 업무 담당자는 경찰이 아닌 선생님이니까요. 이 절차를 잘못 밟았다고 해서, 가해행위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행정심판에서 문제가 되면 관련한 모든 조치도 무효가 됩니다. 가해행위에 알맞은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