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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학교폭력으로 무너질 것이다.-5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by 현장감수성

정리해봅시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해도, 이미 서로 사과와 화해가 이뤄졌음에도, (담임)교사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들었음에도, 고의로 벌어진 사건이 아닌 체육활동이나 이동중에 벌어진 실수나 사고였음에도,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게 지금의 학교폭력 사안처리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언제 무슨 일로 신고할지 몰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의심과 불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2년생 아들과 14년생 딸을 키우는 저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쳐가지고 집에 오면 사진부터 찍어둡니다. 그리고 메모도 덧붙입니다. [20XX년 X월 X일 XX시 경 어디에서 누구랑 어떤 과정에서 다쳤다.] 이런 식으로요. 누군가를 신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기는 메모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이 일로 학폭 신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한 메모입니다.


사춘기. 질풍 노도의 시기. 부모보다 또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불안과 혼란을 거치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면서 독립된 개인으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해가며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요. 이 때 중요한 게 또래집단의 영향입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정말 친한 친구 한 명이 나와 세상을 구원해주는 것 같은 엄청난 영향을 서로가 주고 받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학폭과 대입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지금 중고등학교는 마치 서부극을 연상시킵니다. 서로 거리를 두고 허리춤에 찬 총을 언제 뽑을지 항상 긴장하고 있는, 서로 함께하며 입으로는 웃고 떠들지만 눈으로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불안정한 상태. 본래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기도, 유지하기도, 원만하게 마무리하기도 어려운 법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요즘 1020 세대가 현실세계에서 관계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는 많이들 보실 겁니다. 그 원인에 이 학폭문제도 한 몫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와 가장 많이 다툴까요. 부통 부모-자식, 남편-아내 사이에서 가장 많은 갈등과 다툼이 벌어집니다. 친할수록, 가까이 지낼수록 부딪힐 일은 많아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더 멀어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하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사람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10대에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정서와 정신의 발달에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의 학교폭력 법률과 매뉴얼은 이걸 막아버리는 큰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요. 친한 사이에 다투고 삐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홧김에 터놓을 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몇 번 치고 박고 싸울 기회는 어림도 없습니다. 뒤돌아서 생각해보니 내가 좀 심한 것 같아서, 내가 더 잘못 한 것 같고 미안해서 사과 편지를 써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나는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안은 내 장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무사히(?)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친구와, 선후배와, 또래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가슴 속에 쌓이는 불안함과 답답함을 마음 놓고 발산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가족뿐. 만만한게 동생이고 엄마랑 아빠입니다. 학교폭력은 있어도 가족폭력은 없으니까요. 여기서 하나만 다시 짚고 가겠습니다. 심각한 학교폭력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학교폭력을 저지른 가해자(혹은 가해자들)에게 심각한 제재와 처벌을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다만, 모든 학교폭력을 심각한 사안 혹은 심각한 사안의 일부로 간주하여 제재와 처벌로 이어지는 현행 제도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걸 박태웅 의장님은 저서 '눈 떠보니 선진국'에서 서울역 검표원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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