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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항복할 것인가 자살할 것인가

by 현장감수성

보는 내내 숨통을 조여 오는 작품을 만났다.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전작인 '허트로커'와 '제로 다크 서티'를 인상 깊게 본 사람으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도 기대를 가지고 봤다. 이 작품은 중3 이상이면 교실에서 함께 보고 토론할 거리도 아주 많은 교육적(?)인 작품이다. 영화라 말해주지 않으면 다큐나 실제상황으로 오해할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기대 이상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새벽에 갑자기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중 누군가) 서울에 미사일이 날아온다. 서울은 초토화가 되고, 사상자는 수백만에 이를 예정이다. 문제는 이 예정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여분 남짓하다는 것. 또 다른 문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

1. 일단 맞는다. 그 후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한다. 하지만 상대가 이 한 발의 미사일로 그친다는 보장도 없다.

2. 일단 쏜다. 왜냐하면 상대가 이 한 발의 미사일로 그친다는 보장도 없다. 그 후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한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대통령이 아니라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에서는 동해상의 어딘가에서 ICBM을 미국 본토로 발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15분 남짓을 3가지 시선으로 다룬다. 이 작품은 이 선택지를 아주 거칠게 요약해서 관객에게 던진다. Surrender or Suicide. 항복할 것이냐 (다 함께) 자살할 것이냐.


나는 이 딜레마를 마주하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류츠신 작가의 <삼체> 2부에 등장하는 '검잡이'이야기. <삼체>의 검잡이는 지구 문명 전체와 삼체 문명 전체의 운명을 손에 쥐고(말 그대로 손아귀에 버튼을 쥐고 있음) 삼체 문명에게 '경고'하는 역할을 책임진다. 삼체 문명은 지구 문명보다 과학 기술 수준이 월등하기 때문에 1:1로 전쟁이 벌어지면 지구는 필패다. 심지어 삼체 문명은 1톤 트럭 크기의 '물방울' 2개만 가지고도 지구를 파괴-여기서 파괴란 말 그대로 행성 자체를 파괴한다는 뜻이다. 물방울은 '강한 상호작용물질'로 이뤄진 물체로 물방울이 지구를 뚫어버리는 일은 총알로 종이를 뚫는 일과 같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격차를 극복할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그 무기는 지구보다 훨씬 강력한 삼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태양계와 삼체의 위치 정보를 전송하는 것이다. (어느 문명이 자신의 위치 정보를 우주 전체에 외치고 나면, 이를 수신한 다른 문명은 결국 그 문명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류츠신 작가는 의심의 사슬과 기술 폭발로 설명하고 있다.) 태양계와 삼체의 상대위치 정보가 알려지면 두 문명 모두 머지않아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정리당한다. '공멸하고 싶지 않으면 지구를 건드리지 마라. 건드리는 낌새만 보이면 지구와 함께 너희(삼체)도 멸망할 것이다.' 검잡이는 그 위치전송용 장치를 손에 쥔 한 명의 인간이다. 인류 전체의 운명이 한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도 같은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한 사람이 실수건 고의건 악의건 미국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결국 미국은 선택지 2번(영화의 결론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인류는 사라지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지금 80억 인류는 폭탄으로 가득 찬 집에 살면서 서로가 먼저 불을 붙이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서부극에서 총잡이들이 모자챙 밑으로 서로를 쏘아보며 피스톨 옆에 손을 두는 극도의 긴장상태와 같은.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이 긴장상태가 무사히 끝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두 번째 드는 생각은 바로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었다. 나라 전체 나아가 인류를 책임질 결정을 내리는 존재는 '인간'이다. 인간지능이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규정 혹은 매뉴얼-은 막상 '실전'이 벌어지자 아무런 쓸모가 없다. 미사일이 도시를 타격할 때까지 18분 남은 상황에서 민주주의도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는 선택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이 선택을 꼭 인간이 직접 해야 할까? 실제 영화를 보면 이런 극단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지능은 매우 취약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는 건 어떨까? 주어진 10여분의 시간 동안 확인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내민 선택지를 보고 실행만 인간이 하면 어떨까? 그런데 그 선택지가 결국 위에서 봤던 그 2개라면? 대신 인공지능이 1번 선택지에 48%, 2번 선택지에 66%라는 숫자를 추가했다면 결정이 좀 쉬워질까? 그러다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결국 최종 실행 권한마저 인공지능에게 넘겨야 하는 걸까? 인공지능에게는 출근 전에 입 맞추고 나온 아들도 없고, 관계가 소원해진 딸도 없다. 8시간 후에 프러포즈를 받을 애인도,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도 없다. 아마 인공지능은 '인간보다는 쉽게'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선택이 정말 인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결말을 두고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다. 그래서 어찌 되었다는 건가? 왜 감독은 영화를 보여주다 마는 건가? 이게 <인셉션>도 아니고 누구 놀리는 거냐? 이 영화는 세 번 꺼진다. 모든 꺼짐을 나는 전환으로 이해했다. 처음 두 번의 꺼짐은 영화 속 전환을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마지막 꺼짐은 영화에서 나와 현실로 전환해서 생각해 보라는 꺼짐이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인류는 꺼지고 암흑만 남는다, 이건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다라고 알려주는 전환. 우리가 이룩한 문명은 결국 우리를 파멸할 무기가 되어버린 걸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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