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by 현장감수성

이 책은 재밌습니다. 만약 당신이 외계문명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았고, 빅뱅이론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고 있다면. 저는 처음 이 책을 읽고 2년 뒤 또 생각나서 다시 읽고, 또 2년 뒤 생각나서 세 번 읽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라그랑주의 삼체문제나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처음 들어 보았다면, 이 책을 쉬이 권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럼에도 한 번 읽어보겠다 하신다면 흔쾌히 응원합니다. 재밌으니까요. 재밌는 책을 읽는 일만큼 재밌는 일이 또 없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놀랍게도) 무척 흥미진진하고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 하여, 대략 줄거리를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배경은 중국, 사건의 발단은 문화대혁명(이라 쓰고 대학살-_-;;;).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가족을 잃고 인간에게 절망하고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 [예원제]는 1960년대 중국 정부가 만든 비밀기지(홍안)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엔 그저 허드렛일을 하다가 그가 가진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일을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기지를 세운 중국 정부의 숨겨진 목적도 알게 됩니다. 그 숨겨진 목적이란 바로 외계 문명의 존재를 찾아내는 일. (미국과 소련이 우주에 인공위성을 보내고 달에 사람을 보내려 할 때) 끊임없이 외계 문명을 향해 전파를 보내며 혹시라도 올지 모를 답신을 기다리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예원제는 태양을 증폭기 삼아 은하계에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깨닫고, 외계 문명(삼체 문명)으로부터 답신을 받습니다. 절대 회신하지 말라는. 하지만 이미 인간에게 절망하고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 예원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답신을 보내서 삼체 문명에게 지구 문명의 정확한 위치를 보냅니다. 당신네 문명이 지구로 와서 인류를 정화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한 사람의 선택으로 지구 문명과 삼체문명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삼체인을 숭배하는 지구 삼체 조직(ETO)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는 또 강림파와 구원파가 나뉘게 됩니다. 이들의 음모에 맞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세력의 대결이 1부의 주요 내용입니다. 파나마 운하에 설치한 비도가 거대한 배를 카드처럼 잘라버리는 그 유명한 장면도 여기에서 비롯하죠. 이후 지구 문명을 감시하고 과학기술을 정체시키는 삼체문명의 '지자'에 맞서 인류는 '면벽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지자'는 삼체 문명이 지구의 과학 기술을 파괴하기 위해 보낸 작은(?) 양성자로, 이게 지구에 존재하는 한 인류가 쌓아온 물리학은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그리고 '지자'가 탐지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찾던 인류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인간의 사고'입니다. 4명의 사람을 선발하고, 이들에게 지구 대통령 수준의 권력을 부여하며, 동시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을 '면벽자'라고 부릅니다. 면벽자 중 유일하게 삼체 문명이 암살을 시도했던 뤄지는 다른 3명과 달리 그 목적을 파벽당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성과(?)를 낸 뤄지는 초대 검잡이가 되어 두 문명의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지구와 삼체문명 모두를 멸망시킬 수 있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크고 무거운 권력과 책임을 한꺼번에 쥐게 되는 이 내용은 보는 내내 독자를 감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죠.


모든 대응책에는 차선책이 존재하는 법. '면벽 프로젝트'의 차선으로 또 하나의 대응책 '스타프로젝트'의 일원이던 청신이 2대 검잡이가 되는 순간, 인류는 패배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물방울'이 등장합니다. 강한 상호작용물질로 이루어진 이 물체 앞에서는 수백 척의 우주 전함도, 지구라는 행성도 아무 의미가 없죠. 날아오는 총알에 휴지로 저항하는 꼴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스타프로젝트'로 뇌만 우주로 날아간, 청신을 사랑했던 원톈밍의 동화이야기로 마지막 희망을 이어가는데......


총 3권으로 이루어졌고, 약 2000페이지에 달하는 만리장성 같은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빠져듭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설정(인류 vs외계문명)이지만 작가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신기한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매력적인 인물- 스창, 뤄지, 창신, 지자, 웨이드 등-도 많이 나오고, 특히 파나마 운하에서 파나맥스급 배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이는 발상이나, 면벽자와 파벽자가 벌이는 수싸움, 우주 전함이 순식간에 전멸하는 모습이나, 질점 공격과 2차원 백터포일 공격 등...... 정말 저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우주 기지 건설이나 우주 전쟁을 묘사하는 방식도 탁월하고 4차원 세계를 경험하는 3차원 존재를 서술하는 내용도 훌륭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인류가 어느 시점에서건 '지구로부터 n광년 떨어진 저곳에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였다면 지금 문명은 어떤 식으로 발전했을까. 내일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인류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아마 <삼체>를 읽은 사람만 그 논의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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