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에서 구해왔더니 이번엔 화성이다!
SF장르를 좋아한다. 재밌기 때문이다. 내가 특히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작품 속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이려 작가가 열심히 쌓아 올린 문장들을 만날 때다. 이 작품은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데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실 이토록 강렬한 첫 문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마션>을 영화로 먼저 만났다. 할리웃에서 구조하기 가장 까다로운 배우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맷 데이먼 주연작. 20세기에 톰 행크스 형님이 목숨 걸고 노르망디에서 구해온 라이언이 21세기가 되자 와트니가 되어 지구를 벗어나 화성에서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맡은 6명 중 한 명인 와트니는 (다른 대원들처럼) 2가지 전공을 지닌 대원이다. 식물학자이나 기계공학자. 화성 탐사 중 갑작스레 불어닥친 모래폭풍에 휩쓸린 와트니의 생체 신호가 끊기고, 그들이 타야 할 우주선마저 쓰러질 위기에 처하자 결국 대장(차여신)은 남은 대원과 함께 화성을 탈출한다. 모래폭풍이 잦아들고 쓰러진 와트니가 눈을 뜨며 영화는 본격 처절하게 과학적인 화성생존기로 들어간다. 위성으로 화성을 감시하던 나사에서 (아무도 없어야 할, 그러므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야 할) 화성탐사 기지에서 이상함을 발견. 이미 지구에서 성대한 장례식까지 치른 와트니가 사실 화성에서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화성생존기와 더불어 와트니 구출 대작전을 전개한다. 와트니는 인분을 섞은 흙에 감자를 심어 식량을 마련하고, 절대 파내지 말라던 방사선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를 파내고, 지구와 통신을 재개하기 위해 수십일 동안 탐사차량을 몰고 가기도 한다.
그 와중에 지구에서는 브루스(베네딕트 웡)가 말 그대로 생명력을 깎아가며 경부고속도로 뺨치는 공사기간 단축에 성공, 와트니 구출 대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목숨이 위험했던 건 화성에 남겨진 와트니도, 헤르메스 호에 탑승한 대원들도 아닌, 지구에 있던 브루스와 그 팀원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 초과근무 수당을 합치면 2년 치 연봉은 되지 않을까?) 나사의 수많은 천재들이 단백질 막대 형태의 식량이 세로 진동을 만났을 때 어떻게 변형되는지 예측하지 못해 로켓이 폭발하는 등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지만, 헤르메스호 대원들이 나사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리치 퍼넬' 프로젝트를 강행. 결국 '아이언 맨'이 된 와트니를 화성에서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이 난다.
영화에서 보면 자세한 이유와 원리를 모른 채 벌어지는 일들을 소설에서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그렇지만 늘어지거나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맷 데이먼이 처음에 낙오하는 과정과 죽지 않은 까닭이나 갑자기 기지가 폭발해 수미터를 날아가며 부상을 입게 되는 이유(얼어 죽은 감자가 더 중요한 문제 이긴 하지만), 지구와 통신에 성공했을 때 이 소설의 첫 문장만큼이나 열받은 와트니가 날린 채팅(영화는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고 넘어간다.), 탐사 차량을 타고 화성 탈출 오픈카를 타러 가는 여정에서 겪는 사건, 우주선에 남은 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 등이 그것이다. 물 순환 장치가 고장 났을 때 화성인과 지구인의 기싸움은 읽는 이에게 킥킥대는 웃음을 안겨준다.
게다가 소설을 봐서 오해도 하나 풀 수 있었다. 곤죽이 된 단백질바가 우주선을 폭발시켜 맷을 구할 방법이 사라진 순간, 중국의 과학자들이 인류애를 발휘하여 비밀리에 개발하던 로켓을 공개하고 나사와 협조하는 부분을 두고, 이를 중국 자본이 할리웃 영화 시장을 침략하는 것이라 해석하는 너튜버가 있었다. 원작에 없던 내용을 각색한 것인가 하고 소설을 봤더니 원래 소설에서 중국의 협조가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편집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영화는 3시간이 넘었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의 마지막은 소설과 영화가 확연히 다르다.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영화의 마지막이 훨씬 더 와닿았다. 각색의 힘이자 영화의 힘이라고 할까. 어찌 되었건 주인공이 지구인으로 돌아온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기에.
고등학교 시절 물리학과 화학을 포기하지 않고 잘 기억해 두었다면, 학창 시절에 '내가 이걸 배워 어디에 써먹나.' 하던 회의감이 '내가 이거 재밌게 보려고 그때 그렇게 공부했구나.' 하는 성취감으로 바뀔 만큼 재미있고 또 재미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본 모든 분들께 소설도 꼭 한 번 보시라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