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쉬거가 삼켜버린 원작 소설
대부분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유명하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를 비롯하여 셜록에 이어 오리엔탈 특급살인까지. 그런데 가끔 책 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가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파이트 클럽'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그리고 코앤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소설은 영화와 같으면서 많이 다르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소설에서는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빠진 인물도 나온다. 영화만 보신 분들께 이 소설을 꼭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한마디로 [도망칠 수 없다.]이다. 조금 더 길게 설명하면,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마주하는데, 내가 내린 선택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 언젠가는 돌아온다.' 정도 되겠다. 영화는 이 [도망칠 수 없다.]는 주제를 한 인물로 의인화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같이 영화를 보던 아내 입에서 '뭐야 이거 무서워'라는 대사를 나오게 만든 인물. 이 인물은 희대의 악역 바통을 조커에게 넘겨주고, 조커는 이듬해 다시 한스 란다에게 넘겨준다. 단발머리와 캐틀건으로 상징할 수 있는 '안톤 쉬거'. 영화만 보면 자칫 빈틈없는 암살자이자 끊임없는 추격자로 생각할 수 있지만, 소설을 보면 이 인물이야 말로 작품의 주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소설을 아주 적절히 가지치기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쓸데없이 곁가지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큰 줄기와 흐름을 따라오도록 구성하고 있다. 후에 타노스가 되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삭제하는 조쉬 브롤린이 주인공 르웰린 역을 맡아 매우 어리석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를 다 본 뒤에 "그거 알아? 이 영화는 음악이 없어."라고 말해주면 "어 정말 그랬어?"라는 답이 나올만한 무시무시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도망치는 르웰린과 쫓아가는 안톤 쉬거, 그리고 계속해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보안관까지. (후에 르웰린과 보안관은 맨 인 블랙 3편에서 다시 만.난.다.)
모든 게임에 최종 보스가 있듯이 이 영화에도 끝판왕이 있다. 그가 바로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다. 요즘 말로 하면 연기 차력 대회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랄까. 마치 전성기 호나우지뉴가 레알 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그 엘클라시코 경기를 보는 기분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엘클라시코이고,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명성(?)을 외계까지 널리 알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어도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닌 다른 안톤 쉬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보다 등장인물이 더 유명해져 버린 작품.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영화와 소설 둘 다 안 봤다면 아무 순서로 봐도 좋다. 단, 어떤 순서로 보건 당신은 아마도 이 작품을 3번 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기. 혹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뒤 다시 한번 소설을 읽기.
이 작품의 제목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영화 내용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제목 <No country for old men>은 사실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예이츠 시인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Sailing to Byzantium - William Butler Yeats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Those dying generations—at their song,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Monuments of unageing intellect.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