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넷째주, OHMJ : 2주간의 여름제주

겨울호 네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by 어느 저자

더위와 여름을 혐오하는 나를 갑자기 제주로 이끈 이유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감내해서라도 가고 싶은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 '숙소랑 서핑 말고는 아무 계획도 없이 가야지' 하며 떠난 제주에서는 상상치도 못한 경험과 만남들이 있었다.


이틀 동안 파도도 못잡고, 이틀은 노즈다이빙(서핑보드가 파도안으로 처박히는 것)만 하다가 처음 파도에 올라탄 순간, 잘못내린 버스정류장부터 해안도로를 걸어 숙소를 가던 중 정자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대화, 여행하다 만났던 사람들과 오랜만의 만남. 등등 오히려 계획에 없이 생긴 일들이 이번 2주간의 제주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기억이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숙소에서 나와 이제는 노선을 외울 듯한 201번 버스를 타고 월정리를 향했다. 버스에서 낮게 나는 제비를 보며 ‘제주 제비들은 바다내음이 날까?’ ‘제 2 공항 결사반대 현수막이 낡았네 취소 된걸까?' 등의 시덥잖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릴 정류장에 도착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제주의 오전이었다. 파도와 태양은 지칠줄 모르고 해변에게, 나에게 달려왔다. 월정리의 해변은 아침부터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너무 더운 날씨에 그냥 수영이나 하고 돌아갈까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서점의 오픈 시간은 11시. 월정리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아무리 산책을 해도 더디게만 가는 시간이 겨우 오픈시간에 다다를 때 쯤 그냥 서점으로 출발해 앞에서 기다리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는 곧장 월정리에 있는 서점인 서점숙소를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담이지만 서점숙소 게스트하우스는 함덕에, 서점숙소 독립서점은 월정리에 있다. 서점에서 잠을 잔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면 한번쯤 들러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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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 해안도로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두 분께서 열심히 마늘을 다듬으시는데 그 양이 족히 500키로는 되어 보였다. 마당의 그늘이 시원해 보여서일까, 아니면 쓰잘데 없는 오지랖이 발동해서일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마늘이 엄청 많네요”


“마늘이 아니라 쪽파요 쪽파”

땀을 억수 같이 흘리기도 했고, 할머니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 잠깐 여기 앉았다 가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해요”

아무래도 경계하실 듯 싶어 묻지도 않은 정보들을 막 쏟아냈다.

“할머니 저는 성민제라고 해요 송이 아니라 성이요. 네, 성이 성이요. 전주에서 잠깐 쉬러왔고 스물 넷이에요”
“학생이여?”
“네? 네 학교 다니구요. 저 앞에가 서점인데 아직 열시간이 멀어가지고 걸어가다가 너무 더웠는데 그늘 빌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제서야 맘이 어느정도 놓이셨는지 말도 놓으시고, 질문도 엄청나게 하셨다.

“뭐가 궁금해서 인사를 하고 그랴. 고마워 인사 해줘서 요즘애들은 인사를 통 안해”
“헤헤 그러게요 저도 사실 잘 안해요 할머니”
“왜 혼자왔어?”
“요즘은 혼자서도 여행 많이 다녀요 저는 좀 혼자 쉬고 싶어서 왔어요 너무 시달려서”
“그려 요즘 애들 살기 힘들다더라”



“서점가서 뭐하려고?”
“제가 사실 책을 좋아하는데 특이한 서점이라 한번 들러보려고 왔어요 할머니”
“그래서 자꾸 뭘 쓰는겨?”
“지금 되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라 적어요”
“뭘 특별하다고 적었싸”

“할머니 괜찮으시면 사진좀 찍어도 될까요??”
“뭘 찍으려고 그려 할머니들을, 맘대로 혀~”
“이걸 심으면 쪽파가 나는거여 쪽파대가 올라 왔을 때 퍼런부분을 잘라서 이렇게 씨도 만드는 거고”
“이 할머니가 요기 집 주인이고 우리집은 저 짝에 있어 도와주러 왔지”

한참을 담소를 나눴다. 저 앞에 서점 오픈준비를 하는 사장님이 보였다. 서점에 가려다 들렀지만, 저 서점에 어떤 책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간 국내여행을 하면서 현지에 계신 분들께 이렇게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는 일을 나는 거의 해본적이 없었다.

“밥 먹었어?
“네 할머니 아까 저기 해변쪽에서 고기국수 사먹었어요”
“그거 가지고 되겠어? 그 등치 봐봐 들어와서 점심 먹고가 안그래도 먹을 참인디”
“아녜요 할머니 저 배불러요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들어와 그 나이에는 돌아서면 배고픈겨. 뭘 국수가지고 들어와”

한사코 거절해도 이끄시는 할머니. 어느새 눈앞에 놓인 두 그릇은 되어 보이는 고봉밥.

“많이 먹어 톳 무친거 혈압에 좋으니께 먹고, 안매운 고추니까 된장찍어 먹구 고기도 다 먹어버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제주도 사투리도 배우고, 며느리 자랑,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이거 다 우리 며느리가 수 놓은 겨"
"같이 사는 손주 둘이 초등학생인데 똘똘해 아주"

밥을 먹다, 정을 먹다, 그리움을 먹었다. 설거지라도 해드리려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니 국그릇 가득 3:3:3 황금비율할머니 커피가 담겼다. 아니 할머니의 손주사랑이 담겼다.

“뜨거운게 천천히 먹어”

그렇게 다시 마당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같이 쪽파를 다듬었다. 시원한 바람, 정겨운 소리, 뜨거운 무언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할머니 저 이제 가볼게요"
"쫌 이따 우리 메느리랑 아들이랑 손주오면 같이 밥 묵고가지 벌써가게?"
"배가 너무 불러서 내일 까지 안먹어도 될 것 같아요 할머니"
"그랴 조심히가고 다음에 제주도 오면 또 밥묵으러와"



제주에 눈이 많이 왔다던데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제주도에 가면 꼭 한번 다시 찾아가야지.
나도 지나가는 여행자한테 밥 한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마음 속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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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apw1IjG-0E


제가 느낀 이 특별한 경험을 더 가까이 나누고자 영상을 업로드 합니다. 유튜브 링크에 짧은 영상을 올려 놓았습니다. 글로는 표현 못할 할머님들의 말투와 단어들을 한번 들으시고, 다시 한번 읽어 보시면 더욱 생동감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주도 감사합니다.



from.OH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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