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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14. 2021

[여름호] 셋째주, 하다 : 전하지 못할 편지

여름호 세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친애하는 개구리 선배님 안녕하세요. 제가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작성해봅니다. 안녕하신지요? 제가 그리 안녕하지 못하니 선배님만큼은 안녕하기를 바라봅니다.

요즘 저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쪼잔하고 소심하며 뒤에서나 속닥거리는 나쁜 사람입니다. 가끔 수식어가 까먹을 때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답니다. 세상 나약하고 비열하며 뒤에서나 공작하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저는 오늘도 그런 온갖 수식어가 붙는 나쁜 짓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행동이 선배님이 지나가다 넘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온 것도 아니고, 선배님께서 이 글을 읽고 나서 저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무척이나 이상한 사람이기에 이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제 일기장에만 적었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덩달아 머리도 빠지고 거기다가 심장도 빠질 것 같아요. 그래서 몇몇에만 말해보려고 합니다. 괜찮으시죠? 다시 말하자면 저는 선배님께 직접적으로 말하기에는 한없이 나약하고 떨리는 존재이기에 빈 종이를 쓰레기통 삼아 탈탈 털어서 보내려고 합니다. 선배님의 마음은 하늘 같고 바다 같고 땅 같으니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요 며칠 저희 학교에서는 신규 사업 준비로 시끄러웠지요.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학장님부터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게 된 저까지 각 연령층을 대표한 사람들이 매주 모여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첫 회의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신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네 번을 반복하다 결국 엄마의 등쌀에 밀려서 열심히 뛰어 갔습니다. 한 껏 긴장하며 들어갔더니 이미 모인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며 웃고 있더라고요. 괜히 미소가 지어져, 앞날이 기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미소가 사라지고, 저의 마음속에는 돌덩이가 앉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막내라 그런지, 회의 때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오기 일 수 있었습니다. 말을 할 틈이 없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겨우 한마디를 하는 상황이었죠. 물론 저도 당당하게 공고를 통해서 합격했기 때문에 떳떳하게 의견을 내려고 노력을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없다 보니 매번 어른들이 말하는 의견에 고개만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걸 알기에 회의에 참여하기 전에 저는 ‘꼭 오늘은 내 의견을 말해야지’라고 다짐을 하고 갑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빛을 발한 듯, 제가 말한 아이디어가 통과되어 실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선배님께서 전화가 온 겁니다. 기억나시지요?

혹시나 선배님께서 그때의 기억이 안 나실 까봐 제가 생생하게 녹음한 내용을 가져와 들려드리겠습니다. (찌직)

“수달아, 내가 보기에는 너랑 생쥐는 아무것도 안 해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 같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한 종이에 적어서, 누가 더 많이 했고 못했고를 모르게 하자”

“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이미 아이디어를 냈는데,”

“ 그래? 그래서 어디 무리랑 할 건데 ? 연락은 해봤어? 안 했잖아. 이제부터 다 같이 역할분배를 하자”라고 선배님께서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앗 저는 아직 시간이 남아서, 거기까지는 안 했지만 역할 분배를 하려면 제 아이디어 구체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조금만 더 제가 기획서를 써보고 같이 역할을 나눠보는 건 어때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봤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선배님께서 버럭 화를 내면서 말씀하셨지요.

“ 그럴 거면 너 혼자 해, 앞으로 우리랑 연락도 하지 마 ”

기억이 나시나요? 이 대화에서 저에게 ‘너는 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놀랍게도 이 이야기의 맥락은 ‘제출한 것이 없다고 해서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였습니다. 참으로 기괴한 이야기였습니다.
‘제출한 것이 없다’고 해서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제출한 것이 없으면 한 것이 없다고 본다.
자신은 그런 것이 생각이 싫다.
근데 너는 한 것이 없다.
라고 말한다는 점이 꽤 논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학우가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더 나은 배움을 위해 선배님께서 아.쉽.게. 틀리신 지점을 조심스럽게 짚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선배님의 논리는 꽤 논리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논리적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선배님꼐서 ‘제출한 것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 것이 없다 .’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하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결국 ‘본인을 싫어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더 나은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지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이미 제출한 내역이 있어서, 이미 관련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 2시간 씩 하는 회의가 벅차고 힘들어서 선배님의 기억이 남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선배님께서 선배님의 착각 속에 갇혀서 결국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셨어도 온 맘 다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변명처럼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이 침묵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는 대뜸 단톡방을 나가셨지요.

그 기점으로 지난 며칠 동안 저는 선배님께서 저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필요했기에 저희의 첫 회의부터 마지막 회의까지 다시 생각해봤어요.

생각해보면 이러한 무시가 한 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심지어 지난번 회의에서는 같은 단원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선배님이 다른 선배님과 함께 ppt를 준비하여 발표했었지요? 저는 그때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제가 다른 용도로 만들었던 자료로 엉성하게 발표를 진행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선배님께서 열정이 너무 넘치는 나머지 미처 저에게 말을 못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지요.

이번에 같이 연구하게 된 분야는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처음 시작하게 분야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밑바닥부터 시작하기에 자연스럽게 무경험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줍니다. 무경험자는 즉,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하는 자로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밀려나고 맙니다. 놀랍게도 그중에 8할은 타자가 아닌 스스로 뒤로 물러갑니다. 정확하게는 힘을 쭉 빼고 밀림을 당하지요. 그러니 제가 말을 잘하지 못했던 것은 선배님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제 탓이 몹시 큽니다.

제 탓이 큰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매번 무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저에게 찾았습니다.
“그래,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인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
“ 그래, 내가 아직 사회를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내가 모르는 문화가 있는 거겠지 ”라고 말이지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배님도 처음이었을 때가 있으셨겠지요? 선배님께서 태어나자마자, 펜을 잡고 ‘이것이 연구다’을 적으면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분명 그런 적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혹시나 아니시라면 여기까지만 편지를 읽어주시고 이 편지를 찢어서 버려주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스스로 뒤로 물러갔지만, 책임감만큼은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꾸준히 무언가를 작성했고 제출했고 이야기 나눴고 재고했고 재고했고….. (길어서 중략) 했답니다.

저는 온갖 수식어가 붙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땅속 깊이 머리를 처박으면서까지 낮췄고, 저 자신을 의심했으며 그렇게 하면서까지 선배님의 옳은 일을 하셨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역지사지]를 수백 번 시도해본 결과, 선배님께서 그렇게 될 수밖에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기에 선배님을 제가 감히 안타까워하며 동정합니다.

비록 앞으로 사회의 핵에 접근하게 될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선배님께서 말씀해주신 말을 토대로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건강한 선후배 관계에 노력할 예정입니다. 혹시 궁금하실까 싶어서 딱 두 가지를 들려드리면 첫 번째로 후배들이 마음껏 자기 생각을 말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가 후배들에게 기대한 존중만큼 나도 그들을 존중할 것입니다.

물론 저 또한 유교 사상에서만 갇혀 살았던 전적이 있어서 가끔 지키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이번에 선배님의 가르쳐 주신 배움을 토대로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더 나은 인간이 된다면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부단하게 노력해서 사회에 이바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후련하다.



from.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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