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의 오후,
이름을 잊어도 괜찮은 이유

할머니 선생님과 새댁선생의 다정한 틈새

by 박현숙

"낮과 밤이 공평하다는 춘분,

나는 내 마음의 저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 사라진 파일, 선명한 기억



문득 50세 되던 해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내 인생이 춘분이다' 일기가 떠올랐다.

파일을 뒤져도 그때 그 글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100세 인생을 하루로 치면,

춘분(春分)이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밤보다 낮을 더 좋아한다

낮이 길면 왠지 하루가 더

풍부한 느낌이라서 일까?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일구고(텃밭 가꾸기),

아이들과 어르신을

마주하며(미술 수업),

'생산적인 기쁨'이 힘겹기도 하지만

삶을 유지하는 원천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문장을 쓰며

인생의 절반을 통과했다는 비장함과

본격적으로 빛의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동시에 품었을 것이다.


# 50대의 춘분과 지금의 춘분.



그리고 수년이 흘러 60대의

문턱을 넘은 오늘,

다시 절기 ‘춘분’을 맞이하며

그 시절의 글을 다시 복원해 본다.


50대의 나는 ‘특기적성 방과 후 강사’였다.

나의 전문성을 뽐내며 아이들을 이끌던, 말하자면

교실의 명확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60대의 나는 ‘돌봄 미술’ 현장에서

아이들의 활동을 돕는 보조의 역할에 더 가깝다.

가끔은 중심에서 비껴 나 배경이 된 듯한 기분에

쓸쓸함이 스칠 때도 있다.


인생의 해가 가장 높이 떴던 정오를 지나,

이제는 옆으로 길게 누운 오후의 햇살이 된 기분.

그런데 이 ‘오후의 빛’이 주는 묘한 다정함이나를 다시 웃게 한다.


얼마 전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기엔 내 기억력의

시계가 가끔 멈춰 설 때가 있다.

발표를 시켜야 하는데

아이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고육지책으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미선이 짝꿍, 발표해 볼까?”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선생님, 저 선혜예요!”라고

제 이름을 먼저 외쳤을 텐데,

그 녀석은 달랐다.

생긋 웃으며 이렇게 답하는 게 아닌가.


“미선이 짝꿍, 김선혜입니다!”

선생님의 당황스러움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으려,

내가 던진 호칭을 그대로 받아 안고

자기 이름을 덧붙인 아이.

그 예쁜 마음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줄 알았는데,

실은 이 작은 존재들이 나의 빈틈을

햇살처럼 채워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어도,

잠시 이름을 잊은 ‘할머니 선생님’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빛나기보다 아이들의 작품이

빛나도록 배경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지금 내 인생의

'길어진 낮'을 채우는 방식임을 깨닫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로당 수업에서

나의 이름은 “ 새댁 같은 선생님~!! "

70대 어르신들 눈에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기특한 ‘새댁’ 일뿐이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할머니’였다가,

어르신들에게는 생기 넘치는

‘새댁’이 되는 이 기묘한 시간의 간극.

이것이야말로 춘분이 주는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안식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활력이 되는 삶.

50대에 생각했던 춘분이

‘수평의 균형’이었다면,

60대의 춘분은 ‘경계 없는 섞임’이다.

사라진 50대의 파일은 아쉽지 않다.

그때보다 더 길고 따뜻한 오후의 햇살 아래서, 나는 오늘 더

선명한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50대의 내가 빛을 내는 사람이었다면,

60대의 나는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다.

낮이 길어진 춘분의 오후,

나의 계절은 여전히 눈부시게 진행 중이다."

50대에는 '절반을 왔다'는 지점의 확인이었다면,

지금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낮의 시작'이라는활력에 집중해 봅니다.


"주인공의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더 넓은 교실의

배경이 되어 아이들을 품어주고 있었다.

나의 춘분은 이제 막 고요하고도

깊은 '오후의 풍요'를 맞이한 것이다."


100세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며



춘분이 지나면 하루하루 낮이 더 길어지듯,

나의 삶도 정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밝고 환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나의 인생 시계는 이제 막오후의 황금빛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해는 아직 중천에 있고, 내가 심어야 할

꽃과 써야 할 글은 여전히 눈앞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