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모형, 귀인을 생각하며
돌이켜보면, 인생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기나 했을까?
늘 전전긍긍, 조바심 내며 살아왔던 내 지난 시간 중에, 흔히 얘기하는 '귀인'이 나타났던 시간이 있었나?
생각이 '귀인'에 이르자, 한 사람, 바로 '네모형'이 떠올랐다(네모형은 별명이었는데, 얼굴형이 텔레비전처럼 네모지다고 해서 선후배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네모'라고 부르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나타난 그는 교무처에 갔다가 게시판에 붙어있는 제적대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곤, 교내 어딘가에 있던 나를 찾아냈다. "너, 미등록으로 제적대상이야."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막상 내 이름이 공고문에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곧장 교무처 담당자에게 갔다.
"나누어 낼 수 없나요? 이대로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도 학생인데 여윳돈이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미용실을 하고 계시던 누님한테 달려가서 당장 현금을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 등록금 일부를 납부하고 나머지는 기한을 정해 내기로 했다. 나머지도 그가 여기저기 알아봐 준 결과 융자금으로 충당했다(등록금 분할납부도, 학자금 융자도 일반화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다).
스무 살 남짓, 기껏해야 나와 한 두 살 정도밖에 나이차이가 안 났던 한 학번 위인 그가,
어쩌면 그렇게 어른스러운 일처리를 할 수 있었는지,
대학을 중퇴할지도 모르는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서 만난 사람, 살면서 내내 고마웠음에도 그가 바로 나를 찾아준 '귀인'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람.
네모형과 나는 그 당시 학교 간 연합서클(연합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던 선후배사이였다.
학생활동이란 것이 주로 '독재타도'를 외치던 시대를 반영한 것이어서, 세미나와 집회장소를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소위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나는 그저 약간의 비판적 사고와 의식,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캠프파이어가 있던 날, 우리는 진실게임 같은 걸 했었다.
네모형 차례가 되었을 때,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사랑하는 후배 OO이'라고.
당시 그에겐 예쁜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 역시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그의 발언으로 내 마음이 설레거나 하지는 않았다. 캠프파이어날의 말이 '등록금사건'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모르겠으나, 그 후 네모형은 군에 입대했고 나도 자연스레 그를 잊었다. 휴가를 나오거나 전역한 후이거나 결혼식에서 우리는 한두 번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십 대의 많은 날을 보내며 나는 한 번도 그를 '내 인생의 귀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그는 언제나 내게 고마운 선배였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 中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중에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금방 잊혀지고, 간혹 잊은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나며, 가버린 줄 알았는데 문득 내 앞에 서있기도 하는, 그런 게 바로 '인연"일 테지.
나에게, 네모형은 인생의 여러 오르막길 중 어느 하나의 오르막길에서 만났던 인연이며 귀인이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내 손을 잡아주며, 나를 가로막아선 벽에 문을 내고, 그 문을 열어준 오래 전의 네모형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