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소리

by 올리브

시험을 보다가 흘러내리는 눈물에 당황한 기억이 있는가?

무슨 말이냐고? 시험시간에 집중해야지, 왜 우냐고?

시험이 어려워서? 떨어질 것 같아서?

아니다. 그냥 슬퍼서다.


그 당시 나는 중국 북경에 살고 있었고, HSK 자격시험을 보는 중이었다. 일종의 중국어 능력평가시험이었는데, 독해지문을 풀다가 눈물이 났고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으며, 급기야 목이 잠길 만큼 슬퍼졌다.

내가 기억하는 지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느 때처럼 혹은 자주 집전화가 울리고 있다. 누군지 안다. 부모님이다. 휴대폰 대신 굳이 집으로 전화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나'는 집전화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받아보면, 별 얘기가 없다. 대부분, '밥 먹었느냐', 별일 없느냐?'는 안부전화다.

무슨 일 있냐고 하면, '아니 그냥, 네 아버지가 할 말 있는 것 같아'하고 엄마는 전화를 바꿔주는데, 수화기너머의 아버지도 예의 별 이야기가 없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가 전화는 이내 끊긴다. '나'는 '요즘시대에 누가 집전화를 쓴담, 불편하게시리...' 하고 투덜거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집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아무도 집으로 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목이 메는 걸 참고 남은 문제를 푸느라 애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날이던가,

전화벨소리가 울릴 때, 나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설레임 가득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곤 했었지.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할 거야."

세시부터 다정한 마음과 사랑이 피어오르고 어쩌면 그 하루는 온종일 행복으로 물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독해지문 속의 '나'에게 전화벨소리는, 나를 기다리던, 내 목소리를 기다리던 부모님의 설렘과 기대였으며,

어느 날 네시의 전화벨소리는 기다림 끝에 도착한 행복이었다.

이제 나는 집전화대신 휴대폰 속 문자를 기다리지만, 아직도 TV옆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모님 댁 집전화를 기억하며 가끔은 그 번호로 전화한다. 언제까지나 거기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집전화는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중일 테지.


어릴 적 아버지가 캐비닛 문 안쪽에 펜으로 써서 붙여두셨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시킨의 시 구절 중 '지나간 날은 모두 그리워진다'를 떠올리며, 금방 가버려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바로 그건 내게 소중한 존재이거나 시간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집전화 벨소리도,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도, 지루하게만 여겨졌던 기다림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리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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