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건네는 위로

by 올리브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두려운 거다.

회사를 못 떠나는 이유를 깨달으며 생각했다.

회사에 더 이상 아무 미련이 없는데도 단지 이 하나의 이유로 못 떠나는 거라면 떠나는 게 맞는 거야.

인정욕구가 강해서일까?


눈 내린 다음날, 햇살 좋은 날에 2층카페에 앉아 느릿느릿 지나가는 차들과 백팩을 메고 걸어가는 학생들,

그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가지에 눈이 남아있는 나무들도 결국엔 선명한 푸른빛 하늘에 닿아있다.

또다시 생각한다. 모두 다 제 갈길을 가는데 나는 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가?


내게는 잘 살았던 어린 시절도 있으나 엄마의 이야기로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작은 어린아이였을때 집안경제가 순탄치 못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나와 연년생이던 동생이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남매가 옆집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보고 있으면

엄마는 우리가 그걸 보며 먹고 싶어 하는 게 싫어서 아예 못 보게 데려갔다는 이야기와

그 화살은 늘 아버지에게로 향하곤 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기억하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 안에는 내 남동생이 있었단다.

내 어린 남동생의 죽음과 부재가 찾아오기 전의 그 시간은 아버지가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영화 'About Time'의 주인공처럼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는 아마도 어린 우리 남매가 있던 그 순간으로 가고 싶으셨을까?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인데 떠올릴 때마다 슬프다. 슬픔 하나.


스무 살 언저리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늘 학비만큼은 벌었던 것 같은데 내 손안에 남은 건 없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쿨한 척 다녔다. 친구들은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힘들어하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씩씩해야 했던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슬픔 둘.


다시 인정욕구로 돌아온다.


결혼 직후, 자주 만나던 남편의 동창들과 어느 연말의 대학로 호프집에서 나는 말했었다.

아내로, 직장인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싶다고.

왜 나는 늘 의무를 다짐하고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받으려 했을까?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 채 이 생이 다 지나가려나 보다.

아니 그럴 수는 없는 거다. 이제는 적어도 인정욕구에서 벗어나보려고 한다.

언제나 인정받으려 했고 또 그래야만 했던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사내 게시판에 상반기 승진내정자 공지가 떴다.

늘 그랬지만 연중 이맘때면 항상 어수선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잘 참고 견뎌야 다시 1년을 살 수 있다.

아니라고,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독여보지만, 일일이 전화와 메일로 축하를 보내기도 하지만,

초점 없는 내 눈동자와 급기야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투덜거리는 내 목소리.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나를 알아주지 않는 조직에서 나의 쓸모를 주장해보려고 했다.


남동생이 떠난 자리에 남은 부모님의 슬픔이 기억도 남지 않은 내게 새겨진 걸까?

그래서 그 슬픔은 어느덧 나의 슬픔이 되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견뎌냈던 스무 살 안팎의 나를 생각하면 따라오는 슬픔도 다름 아닌 나의 것이다.

인정욕구에 목말라하던 내 오랜 시간들과 함께...

이 모든 시간 속의 나에게, 지나간 슬픔에 의연해지고 인정욕구에 힘들어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네본다, 나에게 건네는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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