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꼭 아빠 같아라고 말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동생은 고맙게도 3주 정도를 같이 지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3주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그 시간을 내 준 동생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없었으면 정말 텅 비었을 것 같은 집이었는데, 동생 덕분에 남편과 아빠의 공백을 덜 느낄 수 있었다.
잠시라도 말이다. 지나고 나서 보아도 정말 고마운 시간이었고, 정말 필요한 도움이었다.
멀리 살기에도 남매이기에도 평생 동생에게 도움받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평생을 두고두고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큰 도움이었다.
동생은 남편처럼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였고, 우리는 같이 여행도 다녀왔다. 동생이 같이 있어 가능하기도 했다.
아이는 금세 이렇게 말했다. 삼촌이 꼭 아빠 같다고.
그 말을 들은 동생과 나는 놀랐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에 동생은 삼촌은 삼촌이야, 아빠는 아니야라고.
정말 내 동생 다웠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아이에게 삼촌이 집에 있으니 그렇게 느껴졌구나라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해 줬다.
다음날 동생과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재혼 커플을 만나는 프로그램에서 아이에게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어 나왔다는 자기소개에 속으로 자신의 욕심을 저렇게 포장할 수 있나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런데 뭐든지 겪어봐야 아는 거라고, 이제는 그 이야기가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었다.
내 아이도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아빠의 부재에 대해 느꼈던 것이다. 고작 며칠을 함께 보내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 보면 말이다. 동생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동생이 계속 있어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됐다.
아이는 삼촌이 같이 있어줘서 즐거웠고, 아빠의 빈자리를 덜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우리도 삼촌이 있는 미국에 가기로 했고, 삼촌이 돌아가는 것은 아쉽지만 미국에 가서 멋진 선물을 보내주기로 하여 아이도 그것을 기대하며 삼촌을 보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