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동생과 여행을 갔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아이가 어디선가 봤다며 삿포로에 펭귄이 눈길 위를 걷는 동물원이 있다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동생이 그래 가면 되지 가자고 했다.
그동안 남편의 치료기간 동안 별말 없이, 의심 없이 지내준 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확인한 아이의 여권은 코로나 기간을 지나며 만료되어 있었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 여권 발급 신청을 위해 사진을 찍었고, 바로 여권 신청을 마쳤다.
그 당시에는 여권이 만료된 상황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장례를 치른 아이와 함께 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장례식을 치른 이야기를 할까 봐 겁이 났다. 아이의 입을 막을 수도, 비밀로 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인데 나는 그 말들이 다시 되돌아와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돌아올 말들에 대해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장례식을 치르고 하루는 여권을 만들며 어린이집을 가지 않았지만, 계속 안 갈 수도 없었다.
다음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지난 주말 동안 장례를 치렀음을 설명드리고 한동안 아이를 좀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말을 하는 동안 감정을 추스리기 어려웠고 울음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선생님도 함께 우시며,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속상해하셨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했다.
마음은 바로 여행을 가서, 아이 머릿속을 여행이야기로 가득 채워서 아빠의 장례식 이야기를 머릿속 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사실은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금방 깨달았다.
여행은 그다음 주에 가게 되었고, 아이는 그날 등원을 해서 담임 선생님께 "우리 아빠 하늘나라 갔어요. "라고 했다고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꼭 안아주셨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아이는 그 외에는 별다를 것 없이 보냈다고 했다.
덧붙이는 말.
아이가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포장하면 아이들은 진실을 모를 때 자신도 모르게 혼자 상상해서 이야기를 지어내게 되는데 그것이 진실보다 무서울 수 있다고 책을 통해, 경험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옛날의 나보다 더 영특하다.
진실을 말해줘야 남은 양육자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를 기반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