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있는 것 자체를 동경하게 될까봐
나도 아빠 없이 자라지 않았기에, 아이에게 잘 이겨내라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에게 슬프지만 다행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아빠가 병원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느끼기에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가까워서는 아이와 나, 둘이 생활한 시간이 있었기에.
아빠는 죽고 없지만, 우리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아빠를 사랑했던 친구들도 많기에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빠 없는 미래를 겁내지 않게 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했다. (실제로도 주변에서 정말 많이 걱정해 주었고 도움을 주었다. 관심을 표시하고 안부를 잊지 않고 물어봐 주는 것조차도 우리에게는 도움이었다. )
아이들도 양육자의 사망 이후에 여러 가지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책에서는 예를 들면 인터넷을 변함없이 쓸 수 있는지 그런 경제적인 것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것을 나무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고,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것이면 알려준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사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너무 많은 변화를 주면 아이가 불안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주말이나 연휴마다 가족, 친척, 나와 남편의 친구 가족을 만났고 그런 것들이 아이에게 아빠의 공백을 덜 느끼는 것에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아이는 아빠의 죽음을 숨기지도 않았고, 슬플 때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아이의 기질도 잘 받아들이고 또 그것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도 그 일의 전, 후로도 달라진 모습은 느낄 수없다고 하셨다. 감사하게도 항상 잘 지켜봐 주셨다.
아빠 없이 자라게 될 아이에게 미안했고, 나도 겪지 못한 삶을 줘서 또 미안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최대한 덜 느낄 수 있게 노력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고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