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은 아니지만
미리 끊어둔 비행기 티켓 덕분에,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남겨진 일을 해치웠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미국으로 가는 날도 다가왔다.
미국에서 꼭 필요한 아이의 휴대용 카시트와 미국의 입국심사대에서 필요할지 모르는 여러 가지 서류들을 챙겼다. 왜 이렇게 길게 머무르냐고 물으면 내가 말해야 할 사유들과 이를 뒷받침할 영문 증빙서류까지.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짐이 굉장히 많다. 90일을 머무르기도 하고, 동생과 사촌에게 갖다 줄 것들도 있었다. 큰 짐으로 3개였다. 아이와 나 짐 3개.
사실 나 하나에 짐 3개는 불가능했기에, 처음에는 2개만 가져가려고 했으나, 결국 줄여지지 않아 3개를 가져갔고 정말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고생스러웠다.
그것들은 내가 앞으로 짊어질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거웠고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비행기표가 저렴했더니, 나에게는 없기를 바랐던 9시간 지연에 당첨되었다. 여행자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아이와 함께 인천공항 여기저기를 누비고 누벼도, 시간은 길고 길었다.
길고 긴 대기시간과 13시간의 비행을 거쳐 거의 하루 만에 미국에 도착했다. 긴장했던 입국심사대에서는 역시나 길게 체류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고,
나는 아이가 아직 미취학상태이고 남편이 3개월 전에 사망했기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에 입국심사관의 유감이라는 위로를 듣고 무사히 입국했다.
친남동생이 사는 엘에이로 왔다. 사촌은 달라스에 살기에 2주 뒤에는 달라스로 가기로 했다.
언어부터 모든 것이 다른 외국에 아이와 함께 온터라 긴장은 당연했다. 슬플 겨를도 없었고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이래서 큰일을 당하고 이민을 가기도 하나보다 싶었다. 환경이 모조리 달라지니 정말 물리적으로도 뭘 생각하고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정말 그 덕분에 머릿속에 슬픔과 낙심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영어와 이해되지 않는 미국의 불편한 환경들로 분갈이하듯 환기가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