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알려준 것들

커피, 운동, 예쁜 것들

by ogi

나는 원래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회사에서 피곤함이 몰려 올 시간이면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써서 물을 타마시는 정도였다.



남편은 취미가 많은 사람이었고, 배우는 걸 즐겨하는 취미부자였다.

그중 하나가 커피였고, 남편이 자주 커피를 내려준 덕에 마시다 보니 커피 맛도 다양하다는 걸 알아갔다. 손으로 직접 원두를 갈고 내려주는 커피는 향긋하고 투명하고 맑았다. 그렇게 커피를 몇 년쯤 마셨다.


다만 커피를 내리는 것은 남편의 일이었기에 나는 마시기만 했다.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도 좋아했고,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커피를 내려보내기도 했다.


누군가의 피로를 자신의 커피로 잊게 해 주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남편의 병이 시작되고 그래서 어린이집을 옮기고 바뀌어도, 아팠어도 그가 하던 해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뇌전이를 진단받고, 병원 생활이 길어지며 그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은 나를 위해 그림과 글로 커피 내리는 법을 종이 한 장에 담아두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하던 일을 하나씩 양도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남편의 글과 그림으로 배운 핸드드립, 남편과 함께해 왔던 운동, 그가 남겨둔 우리 집의 가구와 소품들 그 속에서 지내는 삶이다.

고통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를 이렇게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커피를 내릴 때마다 그가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고, 나는 아직도 그가 남긴 메모와 그림을 보며 내리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고스란히 남아 나에게 남은 삶을 견디고 지탱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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