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누굴 위한 것일까

결국, 오직 나를 위해서

by ogi

애도를 해보자며 글을 쓰면서도, 모르겠어서 책을 보면서도 이건 누굴 위한 것일까.

망자를 그리며 망자를 위한 것일까. 과연 그러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은 그저 미치기 싫은 나를 위해서였고, 아이가 있는 한, 몸이든 정신이든 아프기 싫었다.


아빠가 없어진 아이에게 미친 엄마까지는 가혹하니까.

그래서 시작했던 것이다.


불가능한 애도라는 책을 통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애도자의 관심은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대상과 함께했던 자신의 이미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대상 그러니까 내가 남편을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상실한 상황에서 조차 그 대상에 의해 사랑받던 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라는 것이다.


상실이 된 건 남편이 아니라 남편에게 사랑받던 나의 상실이라는 말이었다.


맞았다. 남편의 상실은 나에게 나는 이제 누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 줄까? 이제 나를 이렇게 사랑해 줄 사람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 같았지만,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저 부분을 읽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양아치가 아니라 다들 저런 거라는 소리 같았다.



마지막에 가까워지자 남편은 집이 아닌, 대형병원과 좀 더 작은 병원을 오갔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던 대형병원에서는 장기간의 입원은 어렵고, 주치의는 집에서의 생활은 어렵다며 다음 항암치료까지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뇌전이를 진단받았으나 정리할 시간을 좀 더 벌기 위해서 병원에서 항암을 진행하기를 권했지만 그마저도 얼마가지 않아 몸도 마음의 한계라고 하여 그만하기로 했다.)



그걸 반복하며 남편도 나도 점점 마지막이 가까워 온다는 걸 느꼈다.

항암을 위해 좀 더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이때껏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내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너보다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했다.


남편은 아직 더 사랑해 주고, 해줄 것도 많은데 더 사랑해주지 못하고 떠날 것 같다고 미안하다 했다.



사실은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자면, 조금은 힘들다. 잊고 가뒀던 감정, 심지어 그 차 안에서 맞던 햇빛의 따뜻하고 빛이 퍼지는 그런 느낌들까지 고스란히 떠오른다.


크고 굵은 사실들은 사실이기에, 많이 소비할수록 조금씩 둔감해지기도 하는데 감춰놓았던 기억을 떠올릴수록 조금씩 아픈 것 같다.


내가 남편의 투병 중이나 마지막에 가까웠던 마음을 글로 드러내는 건 혹시나 내가 그의 약한 모습을 들추는 것 같아 때로는 불편하다.

그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볼 수 없기에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표현을 하다가도 멈추어지고 기억이 안 난다로 멈추어지기도 한다.

사실 저 뒤의 말은 없었다. 그냥 우리 둘 다 눈물만 흘리다가 병원에 도착했기에.


나는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남편에 비해 서툴렀다.

그러나 저 날은 내가 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정말 기회와 시간이 없다는 게 느껴졌기에.

그저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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