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의 남편 앞에서
사촌의 집이 있는 달라스에서의 일이다.
나의 사촌여동생은 나의 엄마, 삼촌과 성격이 닮았다. 작은 외삼촌의 딸이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급하지만 직관력이 좋고 실행력도 빠르다.
사촌의 남편 미국인과 둘이 인적사항과 사진을 헬스장(스포츠센터)에 등록하러 가야 했다.
잠시지만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진 시간이었다. 계속 정신없이 몰아치던 시간에서 언어의 불편함 때문에도 사촌남편도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둘 다 조용했다.
가는 길 차 안에서도 창 밖을 바라보는데, 하늘도 구름도 하얗고 푸르니 그저 예뻤다. 그냥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어쩌다 내가 이런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을까 싶었다. 한때는 병이 나아지고 안정되면 다 같이 오자 했었는데, 나 홀로 애를 데리고 여기에 와 있는 건가 남편도 없이 싶었다.
다행히 사촌의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따금씩 슬픔은 파도처럼 몰려온다. 다행히 그 파도가 오래 머물거나 걷잡을 수 없이 나를 몰아치지는 않지만, 아직은 그 파도를 오지 못하게 까지는 할 수 없다.
돌아올 때에도 눈물이 났고, 나는 사촌의 남편에게 우리가 같은 해에 결혼을 한 이야기를 했다. 너희가 부럽다고. 너희는 올해 곧 10주년을 맞이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남편과 나는 그들의 웨딩사진 촬영 때 방문해서 웨딩촬영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었고, 결혼식도 3개월 정도의 차이였고 나의 유일한 여자사촌이라 우리는 가까운 사이이다. 둘 다 남동생만 있는 남매라 우리는 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래서 사촌은 나의 일에 자신의 일처럼 더 나서서 안절부절이었다.
그랬기에 미국도 올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도 사촌의 남편 앞에서는 이상한 것 같아 참았는데 마중을 나온 사촌여동생은 눈시울이 빨간 걸 보고 너 왜 언니 울렸냐며 남편을 막 나무랐다. 그는 억울해했지만 속절없이 잡도리를 당하고 들어갔다.
나는 사촌에게 그는 잘못이 없고 내가 눈물이 터진 것이라고 해도 "괜찮아. 우리 원래 이래" 라며 나를 살폈다.
나는 나의 사촌과 있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속 마음이 여려서 내가 우는 걸 보면 견디기 힘들어했다. 나는 괜찮다고 해도 그녀는 내가 우는 게 싫다고 했다. 언니는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슬픔에 잠기지 말라며. 재혼을 강조했다. 물론 그녀는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리고는 "오빠 미안해"라고 말하면서도 진심이라고 꼭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많이 웃기고 유쾌한 편이다. 그래서 내가 슬픈걸 더 싫어한 것 같다.
미국인 사촌남편과는 말이 엄청 잘 통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을 알았고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지냈기에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아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도 나의 슬픔을 알기에 2달씩이나 머무르는 것도 괜찮다고 한 것이고. 우리 모두 전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 슬픔의 파도가 마가 뜨면 오곤 한다.
그래서 아마도 더 바쁘게 지내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쯤이면 오는 파도를 내가 멈출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