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살아있을 때보다 자주 만나는 시댁
남편의 장례식에 많은 친척분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다들 남편이 젊고 건강했었기에 모두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두들 많이 놀라고 슬퍼했고, 비통해하는 시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많은 분들이 오셨다.
경황이 없는 나와 시부모님을 대신해 상조업체를 상대해 주셨고, 장례식 내내 필요한 것들도 손수 직접 챙겨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밤에는 아이와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어찌 됐건 여러모로 감사했다.
그래서 장례식을 마치고 조금 정리가 된 후, 어머님을 모시고 친척분들을 뵙기 위해 부산에도 다녀왔다. 아이는 그 전이나 후나, 밝다.
낯가림이 어렸을 때도 없었고, 낯선 환경도 처음 본 사람도 가리지 않고 새로운 걸 좋아했기에 그 점도 정말 감사하다.
그저 아이는 할머니와 수많은 친척어른들을 보러 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렇기에 남편의 사촌 누나, 형들, 작은댁 등 바삐 다녔다.
그분들도 아빠를 잃은 내 아이를 가여워서인지, 사촌의 아이이기 때문인지 예뻐해 주었다. 만나면 예쁨은 물론, 선물까지 얻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사람을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니 참 다행이다 싶다.
명절이 되니, 가족이 아쉬워졌다. 친정도 시댁도 다녀왔지만 집에 덩그러니 둘이 있는 게 못내 미안했다.
남편이 있을 때면, 양가는 최대한 짧게 머물고 뭘 하던, 하지 않던 셋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최우선으로 했는데, 둘이 되니 틈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시댁을 자주 가게 된다. 그분들도 그럴 테니깐.
나는 남편을 잃었고, 아이는 아빠를 잃었지만, 시부모님은 자식을 잃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슬프다 해도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식을 잃는 건 상상조차 힘든 안될, 일이니까.
그렇다한들 내가 살가운 며느리도 아니고, 그저 아직은 가까운 곳에 있고 아이도 좋아하기에 아이가 우리에게 아직 남겨진 가족이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갈 뿐이다.
그렇지만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자주 가고, 뵙게 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느낀다.
남편의 상실을 다른 가족으로 메꾸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가 그립고 그립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