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수 없는 인간일 뿐임을 느낀다
남편이 죽고 첫 1년의 기일을 맞았다.
초등학교의 입학을 앞둔 아이의 겨울방학이기도 했고, 그냥 정리되지 않는 마음에 글을 쓸까 말까 고민도 되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다.
아이와도 바쁜 시간을 보냈고
첫 번째 기일이라 그런지 감사하게도 남편의 친구, 친척들 방문과 만남도 많았다.
한바탕 지나가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앉아있자니, 갑자기 영화나 볼까 해서 불쑥 혼자 나가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왔다.
슬프다는 글들이 있어 티슈도 준비해 갔는데, 그렇게는 슬프지 않았다.
그래도 은은한 여운은 남겼다. 내가 남편을 잃지 않았다면 분명 눈물을 흘리며 내 젊은 날의 연애를 곱씹어봤을 것이다. 결혼 전에는 나름 인생의 굴곡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생의 굴곡이 있다고 인정하기 싫어졌다. 누가 봐도 굴곡진 인생일 텐데 말이다.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결혼 전의 굴곡진 인생은 그저 나의 드라마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것은 나의 아이에게도 남기는 것이다 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 졌다.
영화에서도 그런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재미는 없어도 평탄한 삶을 살자고.
그게 참 힘들다. 이제 재미 따위는 뭐라고 싶고, 그저 무탈한 게 최고다 싶은데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영화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을 ccm 노래에서 흘렸다.
결국 나도 별 수없는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 그것은 나에게 때로는 큰 다행이고 이럴 때는 별다를 바 없이 심약한 존재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 눈물을 계속 흘리고 싶어서 그 노래를 반복하여 듣고 따라 불렀다. 몇 번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다 보니 조금 개운해졌다.
결국은 그냥 울고 싶었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리운 건지
그냥 내가 그저 가여운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꽤 웃으며 지냈다고 생각했고, 생각보다도 금세 괜찮아지는 게 인간인가 했다.
그러나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털고 나면 또 한동안 괜찮을 것 같다.
다들 그러기를 바란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는 울라고 하나보다.
내가 봤던 영화는 "만약에 우리"였고
내가 우연히 듣게 됐던 ccm은 "야곱의 축복"이었다.
가사에서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라는데 정말 절로 나는 이겨낼 수 없는데 왜 준 거냐는 마음이 복받쳐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지나가다 교회 벽에 있는 그런 문구를 보고 욕을 했었다.
극복할 수 있기에 시련을 준다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원망은 안 한다. 나는 지금 신의 대한 신뢰는 좀 꺾여있는 편이라. 신뢰가 없다면 동시에 원망도 없어야하니까.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고, 없으니 그냥 세상은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