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늦은 일상의 안부
요즘 들어 자주 늦게 일어난다. 누군가의 출근길이 끝나갈 무렵, 나는 부스스한 머리로 창문을 연다. 바깥은 이미 낮이고, 하루는 한참 전부터 시작된 눈치다. 커피포트를 올려두며 문득 생각한다. ‘나는 또 늦었구나.’
그런데, 무엇에 늦은 걸까. 정해진 출근 시간도 없고,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세상에 비해 내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 날은 유독 커피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머그컵을 쥔 손에도 맥이 없다.
일상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커다란 감정도 없이 조용히 스며드는 무언가. 하지만 그 조용함이 때로는 사람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어쩐지 나만 뒤처진 듯한 착각을 준다.
예전에는 달랐다. 일상은 휘몰아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고, 메일은 끊임없이 도착했다. 지하철에서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다가, 회사에 도착해서는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일상을 쥐어짜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스스로의 시간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고요함이 낯설다.
느리게 사는 삶은 처음엔 당황스럽고, 그다음엔 불안하고, 그다음엔 조금 편안해진다. 고요한 아침에 따뜻한 물을 마시고, 햇볕이 잘 드는 쪽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무언가를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일상은 내게서 일을 빼앗았지만, 그 대신 숨 쉴 틈을 주었다.
하지만 그 틈이 늘 위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틈새로 스며드는 감정 중에는 외로움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이 늦은 리듬이 언젠가 나를 망치진 않을지. 그럴 땐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괜찮아?”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게 된다. 그 질문이 낯설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묻지 못한 말을 나에게 건네는 요즘이다. 그래도 대답은 솔직해지려고 한다. “응, 오늘은 조금 괜찮아. 어제보다는.”
거창한 성취가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성과가 없더라도, 내가 나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요즘 내가 바라는 유일한 안정이다. 커피는 식어가고, 하루는 천천히 저물어간다. 다시 창문을 열어 본다. 오후의 햇빛이 내 방 벽에 살짝 걸려 있다. 문득, 이 늦은 시간도 누군가의 하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내 일상은 늦게 도착하지만, 도착하지 않는 날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