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 사랑은 나를 다치게 했지만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여름이었다.
무더운 날,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그녀는 웃었다.
처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사랑은 대개 그렇게 시작된다.
큰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온기 하나로.
그 온기가 생활 속 빈틈을 채운다.
그땐 몰랐다.
온기를 오래 붙잡으려다 보면, 손이 데일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나를 아껴줬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믿을 만큼.
나는 그 믿음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아낌이 방향을 바꿨다.
무엇을 입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까지 묻고 판단했다.
처음엔 관심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숨이 막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신 날.
집 앞 골목까지 따라온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다시는 그러지 마.”
그 순간, 내가 잘못한 건 늦게까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녀가 모르는 시간을 가진 거였다.
사랑이 상처로 바뀌는 건 순간이다.
그 순간을 넘기면, 그전의 모든 장면이 다시 해석된다.
함께 웃었던 밤도, 함께 걸었던 길도, 의심의 색을 입는다.
나는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없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넌 변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너도”라고 답했다.
사실 변한 건 사랑이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 그 안에 있던 성질이 드러난 것뿐이었을지도.
지금도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좋았던 순간만 꺼내놓으면,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그 온기가 상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은 나를 다치게 했다.
그렇지만, 그 다침 덕분에 나는
다음 사랑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