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줘

자기검증이론

by 뿡어




“너는 다 잘해. 너는 다 잘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관식이가 딸 금명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은 결과를 보고 내리는 판단이 아니다.
금명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해낼 사람이라는 믿음을 담아 꺼낸 말이다.


"아빠 짜증 나."


그러나 금명이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자신이 느끼는 지금의 모습과, 아버지가 믿는 그 모습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일까.

왜 어떤 말은 이렇게 따뜻한데도 마음에 곧장 닿기 어려워 보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self-verification, 즉 자기 검증 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갖고 산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타인도 똑같이 봐주기를 바란다. 이게 꼭 멋지고 긍정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을 부족하다고 믿는 사람은, 누군가가 “넌 좀 부족해”라고 말해줄 때 이상하게도 더 안정감을 느낀다. 그 말이 자신이 믿는 이미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치하는 감각을 '심리적 일관성(psychological coherence)'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그것이 무너질 때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말은 위로여도 불편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때로는 쓴소리가 더 편안하게 들리기도 한다. 자기 개념과 어긋나는 피드백은 마음을 흔들고, 혼란을 만든다.


반대되는 개념으로 self-enhancement, 즉 자기 고양 욕구도 있다. 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이 두 가지는 때때로 충돌한다. 우리는 칭찬을 받고 싶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알아봐 주길 바라기도 한다.


“넌 잘해”라는 말이 다 같은 울림을 가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말이 나의 정체성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지금의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라진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불안이 줄어들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오히려 불안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피드백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이 내 안의 나와 맞아떨어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이에는 이런 이론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넌 다 잘해.”


그 말이 지금의 나와 맞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그 말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금명이는 그걸 안다.

관식이의 말에 금명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지만, 그 안에 흔들림이 있다.
그 말이 자신을 향한 지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를 믿는다.'
그 믿음이 결국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나를 나답게 보는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때로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도 그 모습에 가까워진다.

self-verification은 우리를 지켜주는 감각이지만, 그걸 넘어서는 관계의 힘이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이론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힘에 대해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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