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주 신경이론, 사슴 이야기
숲 한가운데를 달리는 사슴 한 마리가 있었다.
짙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노을이 스며들고, 사슴의 발굽은 마른 낙엽을 쓸고 지나갔다.
사슴의 숨은 점점 가빠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갈비뼈 안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등 뒤에서는 호랑이의 낮고 거친 숨소리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마침내, 호랑이의 송곳니가 사슴의 허벅지를 스치듯 물었다.
아프다는 감각이 올라오기 전, 놀랍게도 호랑이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한눈을 팔았다.
그 순간은 사슴이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부분의 사슴이라면 다시 깡충깡충 뛰어 숲 속 어딘가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슴은 그러지 못했다.
그 자리에 축 늘어져, 마치 모든 생명 기능이 멈춘 것처럼 바닥에 가라앉았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움직이려는 의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감각은 차단되고 눈동자는 흐려졌다.
이 이야기 속 사슴은 실제로 존재하는 신경생물학적 반응의 산물이다.
'다미주 신경 이론(Polyvagal Theory)'에 따르면, 이러한 반응은 뇌가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방어 기제, ‘얼어붙기(freeze)’ 또는 ‘붕괴(collapse)’ 반응에 해당한다. 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심장 박동을 늦추고, 호흡을 얕게 만들며, 모든 감각을 차단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전략이라는 신호가 뇌 깊숙한 곳에서 발령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반응이 트라우마로 각인되었을 때, 몸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데 있다. 도망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그 반응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상담 수업 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층위(몸, 감정, 신경, 기억)의 조용한 움직임을 떠올렸다.
아무도 쫓지 않는데도 도망치는 사람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자주 멈춰버리는 사람들.
그 반응들은 단순한 기질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학습된 몸의 기억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멈춤’이라는 반응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기력, 말하지 않음, 과도한 눈치 보기, 이유 없이 퍼지는 죄책감이나 수치심.
그런 반응들이 단순히 약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전략은 때로 생존을 넘어 삶을 밀어내기도 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게 만들고, 따뜻한 말에도 움츠러들게 하고, 안전한 곳에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든다.
그건 비단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겪을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쓴다.
이런 인간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인간 존재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문장이 누군가의 뇌 속에서 다시 생명처럼 반응하고 마음속에서 작게 울림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글쓰기 이유이자 목적이다.
나는 인간이 살아내는 방식을 공부하고, 그 안에 잠재된 회복과 전환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 사슴은 다시 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제든 다시 뛸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을 동물로 볼 때, 오히려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집니다.”
교수님의 말에 나는 공감했다.
우리는 사람을 ‘인간’이라는 존재로 볼 때, 도덕과 이성, 자기 통제의 틀로 해석한다.
‘왜 저렇게밖에 못하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을 동물로, 생물학적 존재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도 어떤 신호를 감지했고, 어떤 위협을 느꼈고, 그에 따라 생존을 위해 반응했을 뿐이라고.
우리는 사슴에게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라고 묻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도 “왜 그때 그랬느냐”라고 묻기보단 '아,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하고 싶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훨씬 너그러워진다.
나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너그러워진다.
우리가 본능적 반응의 연장선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는 도덕 이전의 차원에서 회복 가능해진다.
나에게 글쓰기는 인간의 본성과 생존을 향한 감각을 이해하고, 그 위에 놓인 삶의 회복을 응원하는 일이다.
모든 움츠림과, 그 끝에서 피어나는 회복을 응원한다.
+어느새 30회네요:) 그동안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권으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