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다

베고, 쓰고, 그리며

by 검도하는 해달

무뎌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궈 두드려서 날카롭게 하다.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해서 강하게 하다.


‘벼리다’라는 동사의 사전적 의미이다. 전자는 물리적, 후자는 심리적으로 뜻을 설명한다. 몇 주 전 아침에 조수용의 ‘일의 감각’을 읽다가 ‘감각을 키운다’라는 구절과 그다음 문장에서 이 동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감각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훈련해서 키워내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동안 각종 사업의 브랜딩을 기획하면서 경험한 것으로 ‘벼리다’의 뜻을 풀어내고 있었다. 눈이 계속 감각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란 말에 머물렀다. 평소에도 브랜딩이나 마케팅은 개성 있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각적인 사람은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는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본질’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본질을 떠올리는 사람이 감각적이라고? 그러고 보니 최근에 수업을 준비할 때 한 지문에서 봤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났다.


“Creativity is derivative, open-source code.”


창의력도 기존의 것에서 출발하기에 파생적이란 것이 글의 요지였다. 이미 있는 것을 관찰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아내므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현상이든, 문제점을 발견하려면 본질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 상식에 맞게 단순화‘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했던 적성검사들은 내가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비춰보면 나도 내 방식대로 창의성을 벼려왔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그것이 베기와 쓰기, 그리기일지도 모른다. 3년 전, 그리고 작년부터 이 3가지를 하면서 내 일상도 조금씩 바뀌었으니까. 죽도를 잡으면서 내가 의외로 맷집과 승부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쓸 때는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기를 말하기보다 더 편하게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릴 때는 내가 의외로 엉뚱한 구석이 있단 걸 알았다.


이 3가지는 각각 다른 시점에 시작했지만, 언젠가부터 둘씩 또는 한꺼번에 어우러졌다. 글에서도 ‘검도’란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림에서도 처음엔 동물만 그리다가 이들에게 도복을 입히고, 호구를 씌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브런치 작가를 준비할 때도 직접 그린 그림을 삽화처럼 곁들이면 글이 더 생동감 있을 것 같단 말을 들었을 때도 작게나마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보지 못하고 있던 나만의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본질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트렌드’라는 허상에 빠져 따라가기 쉽습니다. 남다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고 본질을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 문장에서도 한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 본질이 흔들리면, 기본이 흔들리면 그것이 무엇이든 오래가기 힘들다는 뜻이 아닐까. 이때, 얼마 전의 대련 연습이 생각났다. 상대는 초등학생. 시합 경험이 많아 나보다는 발재간도 좋고, 기술도 화려했다.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왼발은 절대 말리지 않는다, 칼은 항상 가운데를 겨눈다, 거리가 되면 바로 친다. 이걸 떠올리며 머리를 치고 나서였던가. 치려는 것 같아서 잠시 멈칫했는데, 그 사이에 한 대 맞았다. 알고 보니 살짝 일종의 속임수를 쓴 것이었고,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져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크게 개의치 않고, 피드백만 갖고 갔다. 시합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지만 그건 네 스타일이니까. 생각 많은 몸치라 남들보다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화려하지 않아도 기본에 충실한, 타격이 깔끔한 검도를 할 거야. 검도든 글쓰기든 그림이든 그 본질과 내가 벼려야 할 방향을 알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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