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글을 쓰기 가장 힘든 순간은 노트북에 뭔가를 타이핑하기 직전이다."
며칠 전,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 공감했다. 나도 그렇다. 아이패드로 블로그나 브런치 화면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직전이 글을 쓰기 가장 힘든 순간이다. 이왕이면 첫 문장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과 시작이 어떻든 일단 쓰고 보자는 마음이 엉킨다. 머리로는 안다. 첫 문장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 첫 문장 때문에 돌부처가 돼서 몇 분 동안 화면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 키보드를 무심하게 탁탁 두드려서 첫 문장을 대충 쓰고 나면 그 뒤부터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손가락들도 조금씩 타닥타닥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몇 달 동안 평일에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완벽하게 하고 싶단 생각이 오히려 방해가 된단 것이다. 첫 문장부터 잘 쓰려는 마음이 너무 크면 다음 문장으로 나가지 못한다. 일단 쓰고, 그다음에 쓰는 동안 틈틈이 생각났을 때 다시 돌아와서 문장을 다듬는 것이 낫다. 내게는 이 방식이 맞다. 쓰다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읽게 되면서 앞 문장을 이렇게 다듬으면 글의 흐름이 더 매끄럽겠다거나, 글의 주제를 좀 더 간결하게 내지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오를 때가 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의 호흡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5~600자에서 1000자 내외로 글을 쓰게 됐다.
앞에서 '무심하게'란 표현을 쓰다 보니 생각났다. 검도도 때로는 무심하게 칠 때 가장 좋은 타격이 나온다. 예전에 운동하면서 관장님께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생각이 많으면 몸이 둔해져."
죽도를 가운데로 겨누고, 왼쪽 발꿈치를 들고 무게 중심을 건 채 언제, 어떻게 머리를 칠지 너무 오래 재다가 종종 역으로 머리나 허리를 맞았다. 어떤 때는 반대로 칠 기회가 왔는데 알아차리지 못해서 "와야지!"라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그렇게 깜깜이로 지내던 어느 날, 호구를 쓰고 관장님과 대련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 그날따라 언제, 어떻게 쳐야 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해도 해도 모르겠어서 마음을 반쯤 내려놨던 듯하다. 기합을 내지르고 죽도를 관장님의 몸 가운데로 겨누고 있다가 재빨리 죽도를 앞으로 뻗고 오른발을 구른 뒤 앞으로 나갔다.
"그렇지!"
"?????"
관장님의 머리를 정확하게 친 것이다. 아, 몰라!!! 마음을 내려놓고 난 뒤였다. 그동안 상대를 어떻게 완벽하게 칠지 생각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맞곤 했기에 얼떨떨했다. 그때 깨달았다. 무심하게 쳐야 한다는 것을. 마음을 비우고 칠 때 오히려 편하게 몸을 앞으로 뻗어 상대를 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거였다. 모든 시작이 쉬울 순 없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는 그 행동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잘게 쪼개서 하라고 한다. 시작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아니, 완벽은 처음부터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다 보면 내가 바라던 것에 점차 가까워지고, 어떤 때에는 내가 바라던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걸 이제 알았네. 그래서 지금은 글쓰기와 검도에서 '완벽'이란 단어를 조금씩 지우는 중이다. 일단 쓴다. 쓰면서 다듬으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 브런치 글도 쓴다. 대련할 때도 거리가 됐다 싶으면 일단 머리를 친다. 세게 쳤는지, 팔을 뻗었는지, 어찌 됐는진 그다음에 보면 된다. 치고 나서 복기하고, 다음에는 방법을 바꿔서 다시 친다. 하다 보면 느려도 나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