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어느 날 하루 기울이는 노력보다는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눈을 뜨면 러닝머신 위에 올라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앤젤라 더크워스, <그릿>
“어쩌다 한 번 일등은 쉽다. 하지만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하는 것은 어렵다.
그 어려운 걸 계속하느냐 마느냐가 일류와 일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 - 김민성, <플뢰레>
예전에 밀리의 서재에서 다운로드한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로 표시하고, 플래너에도 적었던 문구들이다. 특히 김민성 작가의 에세이 <플뢰레>를 읽으면서 종목은 달라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년 여름, 결혼 전 고향에서의 마지막 시합을 마친 뒤였다. 여자부(일반) 부문에서 재작년과 달리 경기가 풀리지 않았고, 고전 끝에 머리 치기로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전에 승단심사를 앞두고 슬럼프가 길었고, 시합 전에 연습할 때도 관장님께 많이 혼났다. 이래저래 이번에는 왠지 질 것 같다고 느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된 것이다. 점심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오후에는 단체전에 나갔지만 이것도 영 풀리지 않았다.
도복에서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고, 호구 가방을 정리하고, 관장님을 기다렸다. 같이 출전한 다른 관원과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 이제 관장님께 죽었다며 웃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시합에서 진 것보다도 관장님께 혼날까 봐 두려웠다. 같이 시합 연습한 멤버 중에서도 내가 제일 많이 혼나고 울었기에 더 그랬다. 관장님이 오시면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면목이 없어 막막했다. 어느새 대회가 끝나고, 관장님께서 걸어오셨다. 일단은 집에 가야 하니 차에 올라탔다. 패잔병의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갈 길을 잃었다. 입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꾹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죽었다, 이제.‘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혼날 때가 왔군.
“아이고… 힘들지?”
‘?????’
놀라서 고개를 들고 관장님을 봤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닌데??!!
“…….”
“시합이 원래 그래. 해도 어렵고. 해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애썼어. “
관장님의 말씀은 짧지만 묵직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관장님께서는 아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관장님께서는 연습할 때 혼내신 적은 있지만, 시합에서 졌다고 혼내신 적은 없었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 내 손에는 관장님께서 챙겨주신 음료수와 간식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시합이 끝나고, 며칠 뒤 김민성의 <플뢰레>에서 저 문구를 읽은 것이다.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와닿았다. 검도와 펜싱. 종목은 달라도 그동안 운동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저 문장이 대신 말하는 것 같았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본 뒤에도 책을 다시 보는 것이 어려웠다. 검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작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도 죽도를 계속 잡는 것이 어려웠다. 하나, 하나씩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그랬다. 혼자서 속으로 유효 기간을 정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단은 정말 새발의 피건만, 그때는 그랬다. 하물며 7, 8단에 범사이려면… 승단심사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검도를 최소 40년 넘게 해야 한단 건데,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딘 걸까.
그래서 가끔 8~90이 넘어서도 검도를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유튜브로라도 보게 되면 궁금하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나. 시간이 흐르면서 몸도 예전처럼 민첩하지 못하고, 언젠가부터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신체적, 물리적 유효 기간 때문에도 운동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유효기간을 넘어서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