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하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브런치북 기획안과 거기에 들어갈 글 작업을 시작하면서, 예전 기록들을 다시 읽고 있다. 한동안 결혼 준비를 포함해, 이런저런 일로 바빠 잊고 지냈다. 그 사이에 몇 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흔적을 다시 보니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아니, 내 것이라서 고통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구나. 전혀 다른 사람 같다. 그때의 나는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종이를 천천히 넘기고, 그중 일부를 문장으로 하나, 하나씩 옮길 때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럴수록 글이 예전보다 더 나아지고, 생생해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키보드로 두드려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살을 칼로 베는 것 같다. 내가 시작한 건데도 날카롭다. 더 이상 못 보겠다, 더 이상 들어가면 힘들 것 같다, 하면서도 마지막 마침표까지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첫 번째 이야기를 다시 다듬어도 이런데 앞으로 어떡하지, 하면서 목차 수를 세어본다. 쓰다 보면 바뀔 것이다. 제목도, 글의 수도, 그림도. 이야기를 하나씩 쓰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때가 떠올라 손가락이 잠시 멈추기도 할 거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다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언젠가는 스스로 정리해야 할 거였다. 단지 이제 시작했을 뿐. 어제도 글을 쓰며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라 그림을 하나 그리고, 거기서 또 뭔가가 떠올라 하나를 더 그렸다. 검도복을 처음 입었을 때, 나는 하얀 잿빛이었다. 이 책이 끝나갈 때 즈음, 이 그림의 배경과 인물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