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래는 내가 지켜줄 거야...
사람들은 나를 따개비라고 부릅니다. 무지무지 큰 흰수염고래를 아래에 달고 다니는데 고래 등에 붙어산다고들 합니다. 고래는 가끔 남쪽 먼바다 끝까지 가서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조각을 어깨로 밀면서 장난을 치곤 합니다. 그러다가 혹시 내게 붙어있던 고래가 떨어져 나가 차가운 남극 바다를 헤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나는 고래의 등을 꼭 잡아 줍니다. 고래가 힘차게 헤엄치며 숨을 내쉴 때 뿜는 물기둥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무지개는 나를 황홀경 속으로 빠트립니다.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의 그 청록빛 아름다움은 무거운 고래를 달고 다니는 힘든 것을 잊게 합니다. 나의 걸음은 참 느립니다. 고래 등에서 배 쪽으로 가는데 한 일 년쯤 걸립니다. 고래가 떨어지지 않게, 고래가 모르게 움직이려고 하니 그 정도 걸립니다. 고래의 겨드랑이를 한번 간질이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몇 달 전부터 내 흰수염고래는 새우를 아주 많이 먹습니다. 근처에서 가장 무거운 고래를 달고 다니는 할아버지 따개비가 ‘너 고래가 새끼를 낳으려는가 보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고래도 그러다가 새끼를 낳았다고 합니다. 새끼 고래는 참 예쁩니다. 작은 몸을 어미 고래에게 비벼대며 미끄러지듯 어미 등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헤엄도 곧잘 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어미 고래에게서 태어날 새끼고래도 아기 따개비가 있어야겠네요. 나도 서둘러 아기 따개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혹시 태어날 아기 따개비가 고래의 수염 아래에 붙으면 어떡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 따개비는 평생 새끼 고래를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나요. 얼마나 힘들고 불안할까요. 먼 조상 따개비들 중에는 귀신고래를 이고 다니다가 고래를 떨어트린 흰줄따개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따개비가 없어졌으니 그 귀신고래 또한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오늘도 내 고래는 힘차게 차가운 바다를 가르며 헤엄칩니다. 찬바람이 딱딱한 등껍질을 파고들어 아려옵니다. 그래도 내 고래는 내가 지켜줄 겁니다. 고래야 달려.
우리, 혹시 지치고 힘들면... 그래도 나의 고래를 위해 힘껏 달립시다.

군더더기:
고래 낙하(whale fall)라는 것이 있다
고래 낙하는 지구상 가장 큰 흰수염고래가 죽기 전 아주 먼 곳으로 가서 모든 남은 힘을 다해 깊은 바닷속(수심 1,000미터 이상)으로 마지막으로 잠수하는 것이 고래 낙하이다. 이런 고래의 몸은 수백 종류의 물고기와 심해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고 지구별을 떠나는 것이다.
어찌 고래만 그러하겠는가. 지구상 아주 작은 생명체일지라도 죽으면 다른 생명체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경이로운 자연의 순리이고 질서이다. ('nave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