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봄산

늘어지게 누워 있는 4월 봄산 보며

by 무상행

지난겨울은 긴 겨울이었다. 3월이 되어도 영하의 날씨로 춥다가, 중순 들어 갑자기 연일 기온이 20도 이상을 오르내리며 봄이 찾아왔다.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던 나무와 풀 들이 소문을 듣고 허둥대며 봄꽃을 피워낸다. 봄꽃들이 순서 없이 핀다. 그러나 자연은 이치를 벗어나는 법이 없듯, 다시 추워졌다. 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찾아왔고 기간도 길었다. 꽃 피운 나무와 풀들은 다시 꽃봉오리 오므리고서 웅크리고 앉아 추위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4월에 들 때쯤 날씨가 마법이 풀리듯 따뜻해진다. 다시 봄꽃들이 핀다. 가지마다 새싹들이 봉긋이 올라온다, 더러는 톡톡 터진다. 대체로 꽃샘추위를 겪고 나면, 꽃피는 순서가 헝클어진다. 며칠 이른 더위도 느껴지는 올해도 그렇다. 왈칵 피어나는 꽃과 새싹들 때문에, 4월의 봄 산의 몸매가 갑자기 부풀며 무게와 부피가 늘어난다. 지구별이 부풀어 오르는 시기이다. 산새들의 부리에도 제대로 연둣빛 봄물이 올라 함께 재잘대니, 봄 산에는 소리도 가득 찬다. 이때부터 갑자기 늘어난 부피와 무게 그리고 소리로 봄 산은 젖몸살을 앓는다.

며칠을 봄맞이로 분주하게 보내다가 산을 찾는다. 산자락에서 건너편 낮은 봄 산을 본다. 그 산은 몸 푸는 것같이 태평스럽게 누워 있다. 예전의 봄 산은 뻐꾸기 소리 들으며 늘어지게 잠만 자서 '게으른 봄 산'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올해는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변명거리가 생겼다. 4월 들어서도 또 한 두 차례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계속되는 봄 기온의 심한 변화로 봄꽃과 새싹들이 몸살을 앓다가 날씨가 따뜻하게 지속되자 순서 없이 무더기로 꽃과 새싹들이 피어난다. 그렇게 갑자기 늘어난 부피와 무게 때문에 힘들어서 누워있다고 봄 산은 변명한다.


봄꽃들은 스스로 예쁜 꽃을 피웠다고, 지나가는 바람에게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봄꽃, 얘들은 뭘 모른다. 봄산이 하늘과 절기를 들여다보며 시간만 헤고 있는 것 같아도, 지난겨울 동안 애벌레, 나무, 씨앗을 보호하며 잠재우고, 필요한 때면 눈을 녹여 수분을 공급하고, 제때 꽃이 깨지 못할까 봐 가끔은 바람에 온기를 넣어 간지럽히듯 흔들어주며 너희를 돌보아 왔다. 꽃 필 때쯤에는 벌 나비 불러오고, 심심할까 봐 연분홍빛 새소리를 사방에 풀어도 놓으며, 봄산은 자기 할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봄산은 봄꽃들이 뛰어놀든지, 장난치든지, 노래하든지, 바람에 날리든지 상관하지 않고, 피곤하여 지금같이 길게 늘어진다. 결국 나뭇가지 새싹이나 꽃들을 세상에 나오게 한 봄산의 충실한 임무 수행에 봄꽃과 나무는 항상 감사해야 한다. 물론, 우리도 감사해야 한다.


봄산을 찾을 때 알아둘 것은

봄을 볼 때 관觀 하는 것이 아니고, 견見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월 山


사월 山은

바리캉으로 서투르게 깎은 까까머리 같다

연녹색 새싹이

동그란 산 모양을 만들고

사이 듬성듬성 핀 하얀 산벚꽃이 마른버짐같이 일어난다

기계독 오른 곳은 아직 회갈색이다

간밤에 내린 봄비에

비누로 머리 감은 사월 山이

까까머리를 매만지며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사월 山 그림자는 하루 한 뼘씩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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