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浮石寺 II

浮石寺도 나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by 무상행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채색하지 않은 듯 알몸이다. 지붕이 봉황산 너머 천 년 전 하늘로 날아가려고 깃을 펼치고 있다. 지붕이 날면 무량수전도 날고, 무량수전이 날면 앞마당도 날아오른다. 그 속에 있는 나도 따라 날아서 천 년 전의 하늘이 보고 싶다. 말로만 듣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다가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처음 선 것처럼 가슴이 떨려온다. 배흘림이라는 기둥 이름도 정겹다.

무량수전無量壽殿

할머니 손금 같이 갈라진 배흘림기둥을 만져 보고, 살짝 기대어도 본다. 토닥거려 주는 것 같다. 눈을 들어 처마 끝부터 아래로 추녀, 공포栱包, 서까래의 어울림을 천천히 눈에 넣는다. 천 년 전 나무 향기도 같이 따라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 곁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처다 본다. 시간이 지나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면 그 자리를 피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 간결한 창살로 꾸며진 분합문을 지난다. 마당 쪽으로 활짝 열린 문 안쪽을 들여다본다. 어둠에 익숙할 때까지 아름다운 무량수전 안 천장에 눈길을 고정시킨다. 이제야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으로 시선을 천천히 내린다. 무량수전이란 나라보물(국보, 國寶)이 소조여래좌상이라는 또 다른 나라보물(국보, 國寶)을 품고 있다.


아미타불 좌상은 왼쪽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본다. 정면에 배치하면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공간감각 확보를 위한 배려라고 하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 상상해 본다.

천 년 전 그 어느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浮石寺에서는 시간이 멈추어 있다. 여름 오후, 아미타불은 그날도 노곤한 여름 산바람이 무량수전을 드나드는 것을 안에서 보고 있었다. 나비 한 마리가 석등 어깨에 앉다가, 보살상이 가슴에 모은 손안에 앉다가 하며 햇살을 즐기고 있다. 무심히 나비가 그리는 궤적을 쫒는 아미타불의 눈이 서서히 감겨온다. 지난밤 법法을 설하려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들렀다가 부처를 만나고 온다고 너무 무리한 모양이다. 구석에 숨겨놓은 목침을 베고 무량수전 앞마당을 보면서 모로 누워 잠들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소낙비가 쏟아진다. 하늘이 우르릉거리며 번갯불이 봉황산 앞이마에 꽂혔다. 아미타불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그래서 무량수전 안에 모신 아미타불은 천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앉지 못하고 오른쪽을 보고 앉아 있다. 시간의 결계結界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그곳에서 나는 자유롭게 뒤돌아선다.

풍경..... 걸쇠

무량수전을 등 뒤에 두고서 다시 앞마당과 소백산 자락을 본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옆에 걸쇠(분합문을 들어 올려 고정시키는 쇠)들이 음표 같이 하늘에 놓여있다. 어떤 노래일까. 낮게 내려앉는 회색 구름을 피하여 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흔드는, 처마 끝 풍경소리로 음을 짐작해 본다.

바람이 한 움큼씩 처마를 지날 때마다,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한 마리가 흐린 하늘을 날아다닌다.


조사당 祖師堂으로 길을 잡았다. 조사당으로 오르는 길 앞 언덕에 삼층석탑三層石塔이 하나 서있다. 또 보물이다. 석탑은 법당 앞 그러니까 무량수전 뜰에 있어야 하는데 이처럼 다른 곳에 있게 한 것은, 한 번 더 다른 곳에서 무량수전을 뒤돌아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발길을 잡기 위한 절묘한 구도이다. 삼층석탑 위치에 대하여 또 다른 상상도 해본다.

원래 삼층석탑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삼층석탑이 무량수전 앞마당 석등에서 아홉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 당시 浮石寺에서는 시간이 멈추질 않아서 삼층석탑이 아무 곳에나 갈 수 있었다. 삼층석탑은 지금 서 있는 언덕에 서서 소백산 자락과 浮石寺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도 삼층석탑은 황학산에 올랐다가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를 듣고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다가 언덕에 앉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浮石寺를 보고 있었다. 그때는 달이 지금처럼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아서 참 맑았고, 밤하늘 가득 찬 별은 가끔씩 넘쳐흘렀다. 삼층석탑은 어둠에 잠긴 浮石寺 밤하늘의 아름다움에 젖어 있다가, 별을 어깨에 걸치고 잠이 들었다. 새벽 범종 소리에 깨어보니 무량수전 앞마당이 아니고 동쪽 작은 언덕이었다. 하필 그날이 浮石寺의 시간이 멈춘 날이었다. 삼층석탑은 그날 이후로 무량수전 마당에 내려설 수 없었다. 천 년 전 浮石寺에는 스님들 빼고 모두 다 잠이 많았는가 보다.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서나 흐트러진 채...

삼층석탑에서 무량수전 앞마당을 보다

다시 한번 이곳 삼층석탑에서 무량수전을 본다. 내 가슴 앞마당에 무량수전과 석등을 천천히 들여다 놓는다. 다 찰 때까지 한참을 떠나지 못한다. 삼층석탑 뒷모습이 참 예쁘다.


좁은 산길을 걸어올라 한 뼘 밖에 되지 않는 조사당祖師堂 마당에 들어섰다. 조사당은 작고 간결지만, 담백함에 침이 도는 상차림 같은 모습이다. 고려시대에 지은 이 조사당도 나라보물國寶이다. 조사당 안 벽화壁畵도 나라보물國寶이다. 浮石寺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라보물(국보國寶)요 보물(보물寶物)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浮石寺에 국보가 5점, 보물이 6점이나 있으니, 우리나라의 국보國寶와 보물寶物이 한 만개쯤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浮石寺만 보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 국보는 약 350여 건, 보물은 약 2,000여 건 이상이다.) 그런데 이 많은 부석사의 보물들을 누가 지키나 궁금하다. 무량수전 안에서 뵌 스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스님을 볼 수가 없었다. 이를 보면 아마도 천왕문의 사대천왕이 얼마나 절을 잘 지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浮石寺에서는 山門을 나설 때 꼭 천왕문의 사대천왕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

조사당을 보면서 이런 맞배지붕을 얹은 집 한 채 지어 놓고 살아보고픈 마음에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꼼꼼히 챙겼다. 조사당 앞에는 신라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뿌리를 내린 선비화가 지은 죄도 없이 철장에 갇혀있다. 손끝이라도 닿을 수만 있다면 의상대사의 불력佛力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중생들의 굳은 믿음이 직선적이고 놀라울 따름이다.

조사당을 끝으로 浮石寺를 내려왔다.


조사당을 내려오며 멀리 보다

浮石이란 떠다니는 돌에 대한 덧없음을 말한다.

꿈을 꾸었다.

浮石寺는 돌이 떠다니는 절이 아니라, 절이 하늘로 떠다니는 곳이다.

浮石寺도 비에 젖고, 나도 비에 젖는다.

浮石寺도 나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 浮石寺 끝.


'부석사뜻' 검색하면...... 뜻풀이에


- 부석사 길처에는 사과나무가 많다. 가을이라면 '홍로'사과를 꼭 드셔보세요.

-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국 건축미의 극치를 말해 주고 있다.

- 부석사에서 바라보는 묘경은 우리나라에서 단연 으뜸이다.

한국 건축미. 묘경.

무량수전과 주위(앞마당, 석등, 언덕과 삼층석탑, 바라보는 소백산 줄기....)의 어울림은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축복이다. 살아있음을, 볼 수 있음을, 기억함을...

- 부석사 무량수전은 귀솟음 양식이 적용된 고건축물의 대표적 사례이다.

- 의상은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가르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 그 돌은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 앞에 있는데, 작은 아랫돌 몇 개 위에 커다란 윗돌 하나가 겹쳐 저 있는 모양이다. 지금도 있다.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 부석사의 연기緣起 설화. 설화이니 용이 나오고......

(緣起 3. 절을 짓게 된 유래(由來)나 부처ㆍ고승(高僧)의 염력에 대(對)한 설화(說話))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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