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_영양군 산나물축제 I

여행 기록으로 묻어둔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본다.

by 무상행

이때는 지역 축제라는 개념이 없을 때라서 지자체 행사인 지역 축제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다. 산나물축제도 처음 열리는 것이라서 무엇인가 엉성한 홍보와 축제 진행이었다. 난 그것이 좋았다. 붐비지도 않고, 지역 촌부들이 쑥스러워하며 캐논 나물을 길바닥에 펼쳐놓고 축제에 참가하고, 무슨 특별 무대도 없었다. 난 그것이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가고 싶은 지역 축제는 기간을 피해서 구경 간다. 나는 그게 편하다.

아무튼, 영양군 ‘산나물축제'에 참가하러 여행길에 올랐다.


경북 영양군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영양군은 전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기초자치단체이다. 또한 육지에 있는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동네이며, 대한민국 유일의 교통카드 제도(2025년 7월까지) 및 택시 스마트 호출 서비스 미시행 지역이라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오지인 만큼 대기 질이 아주 좋다. 심지어 영양군의 5면 중 하나인 수비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밤하늘이 어두워서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2000년대 기준 가로등 하나 없는 감천유원지에서 육안으로 은하수 관측이 가능한 굉장한 곳이었다. 아직도 여름철에 수비면에서 빛이 없는 마을 입구, 다리 위, 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 은하수가 잘 보인다.



초파일이라 가는 길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에 들렀다. (안타깝게도 2025년 3월 경북 산불로 전소되었다)

고운사 입구

편편한 흙길에는 그늘까지 잘 마르고 있다.

소나무 향기는 땅에서 세자 높이에 떠있다.


초파일이라 고운사로 향한 할머니 세 분이 쉬고 있다

할머니 세 분이 쉬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피해 돌아앉아 산을 보며 이야기하니 참 편하다.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인데도...


풍선을 하나씩 잡고 있는 것 같이 연등이 매달려 있다.

설법 한 자락이 바람에 실려 온다. 끝자락에 보살님들 점심공양은 하고 가라고 한다. 초파일 고운사 봉축법요식에 참석 후 영양군으로 떠났다.



영양군 두들마을에 있는 고택에 여장을 풀었다.

큰 마루 끝에는 오후 햇살이 먼저 걸터앉아 있다. 뒤쪽 문고리를 풀고서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시원한 풍경이 바람과 함께 들어와 네모 문틀을 꽉 채운다. 시계를 풀어놓고, 휴대폰을 꺼내놓았다. 잘 닦여진 먹 오디 빛 마루에 꼿꼿이 앉아도 보고, 봄날 게으르게 드러누운 산 같이 누워도 본다. 대들보 위 가지런히 놓인, 뒤틀린 서까래의 수를 세어본다. 수평, 수직, 원근, 빛, 그늘 그리고 여백. 그 속에 있으니 내 몸도 고택의 한 부분이 된다. ‘ㅁ’ 자 고택 안은 그리 답답하지가 않다.


대청마루에 앉아 열린 대문사이로 밖을 내다본다.

뜨거운 오월 하순의 햇살이 기와를 타고 내려와 골목길에 뒹군다. 대청마루 열린 뒷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대청에 잠시 머물다 열린 대문으로 달려 나간다. 등고선을 보고 바람의 길을 셈하는 것은 땅의 셈이다. 비어 있는 곳이 바람이 다니는 길이다.

한참을 있어도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꽃마리나 별꽃 같이 아주 작은 꽃을 찾아가는 눈 밝은 노란 나비 한 마리라도 지나간다면 심심하지는 않을 텐데. 無色, 無臭, 無音. 이런 곳에서는 觀 하지 말고 見 해야 한다.

마루에 풀어놓은 휴대폰이 진동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뛰어다닌다. 일행이 온다는 소식이다.

마중을 위해 일어났다.




둘째 날. 아침 여섯 시, 일찍 잠에서 깨다.


좀 더 잠을 청하나 온갖 새소리, 한 번씩 새벽을 흔드는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더 이상 누워 버틸 재간이 없다. 시골마을 동물들은 새벽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두워지면 자기 때문에 새벽에 깬다. 오후 늦게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짙은 회색 구름이 하늘 아래로 내려와 대기 중이다. 이러면 오늘 행사 취소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으니 마을 구경이나 하러 나선다.

밤을 지새운 가로등 불빛이 부어있다.

빈 고택 마당에 솟대를 세워 놓았다. 솟대 위에 앉은 새는 나는 법을 잊지 않으려고 새벽하늘 빈 곳을 날아든다.

단아하고 고운 집이 한 채 보였다. 산뜻한 모습에 고택인지 근래 지은 집인 지 알 수 없어 다가갔다. 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다. 마당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까치발을 하고서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담장이 너무 높다. 이 집에 어울리는 수많은 정원을 생각해 봤으나 마당은 비워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담장을 따라왔다 갔다 했고, 멀리서 보다가 가까이 다가서기도 몇 번 했다. 대문과 담장에다 지문도 남겨 두었다. 집 앞 넓은 빈 터는 풀들을 위해 한쪽을 선뜻 허락했다.


곁에 있는 ‘광산문우匡山文宇’라는 현판이 걸린 넓고 아름다운 고택을 들러 보았다. 소설가 이문열과 함께하는 곳이다.

문학을 꿈꾸는 이들은 이곳에 머물기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욕구에 며칠 잠 못 이룰 것 같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 듯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원근遠近을 만끽했다. 흐린 하늘에 빗방울 하나 떨어져도 새벽 정적 공간이 흐트러질 것 같다. 시간이 머무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렇게 예쁠 수가.

새벽녘의 맑고 선명한 꽃과 풀 색.

다 가리지 않는 담장의 여유.

숨어있는 폐가 공간.

항상 궁금함의 통로 - 창호지 구멍.

뒤주에서 본 물고기 자물쇠.

하늘의 그물에 갇힌 곳.

못 갈 것도 없는데 결국 떠나지 못할 곳.




주변을 구경하며 행사장으로 가다 보니 도로변에 팻말에 국보가 있다 한다.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模塼石塔)이란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산해리 강가의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다. 이곳 영양은 워낙 오지라서 유배오기도 쉽지 않은 땅인데 어떻게 국보급 탑이 어떤 사연으로 유배되었기에 여기에 이렇게 덩그러니 놓이게 됐을까? 탑은 산사에 있어야 하는데 산사는 없고 왜 강을 건너 여기로 오게 되었을까? 나는 탑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보다 어디에서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흐린 하늘과 한 두 방울의 비가 영양군 행사 담당자를 불안하게 하였으나, 오후 늦게 비라는 일기예보에 따라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산나물 채취 행사장은 일월산이었다. 일월산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日月面)과 청기면(靑杞面)의 경계에 있는 높이 1,219m의 산이며, 태백산맥에 속한다. 이 산에서 낙동강의 상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이 발원한다. 산나물 채취도 좋지만 저 높은 산을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마라고 한다. 버스로 정상부근의 중계소까지 간단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랐다. 일월산 정상이다. 이제는 행사장으로 이동이다. 좁은 산길을 따라 알록달록한 긴 참가 행렬이 움직였다. 나무에는 연녹색 잎이 꽃같이 터지고 있었다.


일월산 정상에서



여행_ 영양군 산나물 축제 II에서 계속.


여행_영양군 산나물축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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