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축제인데 산나물 이야기는 별로 없다. 남 탓한다. 날씨 탓이다
행사 주최 측에서 준비한 산나물 비빔밥으로 식사를 한 후, 간단한 산나물 구분법을 사진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교육 후 행사 도우미 세 분도 소개했다. 소개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을 할머니들이다. 산나물 도사들이란다. 모두 날렵한 차림새다. 드디어 세 개 조로 나누어 산나물 채취 작업에 들어갔다. 모두들 기대와 설렘으로 신나게 출발했다. 가벼운 발걸음들.
산등성이 행사장(봄 일찍 군에서 산나물 씨를 뿌려놓은 곳, 감사)에서 나는 산나물같이 보이는 것을 열심히 채취했다. 한 손 가득들고 할머니에게 자랑하니 할머니(행사 도우미)가 보시더니 다 버리라 하신다. 나무지팡이로 내 발을 톡톡 치며 내가 밟고 있는 것이 참나물이라 한다. 이렇게 교육에 집중한 사람도 어려운데, 사진에서와 같이 교육 시간에 딴 일하는 사람은 결과가 어땠을까. 그래도 다행히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반 봉지 채웠다고 한다. 도우미 할머니는 수시로 참가자들을 둘러보고 공평하게 채워 주셨다.
행사 마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그러나 내일 행사는 비 예보 때문에 취소 됐다.
셋째 날. 우천으로 일정이 취소되고 아침 일찍 귀갓길에 올랐다.
안동을 지나오다가 천등산天燈山 봉정사鳳停寺 안내판을 보고 들러 보기로 했다. 교과서에서 본 봉정사 극락전이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부석사 배흘림기둥도 이곳 극락전에서 볼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차를 돌릴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들렀을 때 봉정사도 들렀다)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중 하나인 봉정사의 최초 창건은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머리가 닿지는 않으나 만세루 아래로 고개 숙이고 들어갈수록 대웅전과 앞마당에 걸린 화려한 연꽃 등이 젖은 길로 한걸음 씩 가까이 다가온다. 浮石寺 안영루를 지날 때의 그 황홀한 만남이 생각난다. 돌계단을 밟으며 줌인(zoom in)을 느껴라. 앞마당에 오른 후에는 꼭 뒤 돌아보라.
대웅전은 추녀 끝부터 젖고 있었다.
빗물이 마당 빈 곳에 고이고, 동쪽으로 난 텅 빈 문으로는 드나드는 바람조차 보기 힘들다.
비 오는 날에는 절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좋다. 비가 온다면 주저하지 말고 山寺로 떠나라.
대웅전 옆 극락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데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극락전 앞에는 세월만큼 늙은 삼층석탑이 호위무사처럼 서 있다. 자기 몸도 돌보아야 오래오래 지킬 수 있는데, 저렇게 비 맞으며 서 있다. 잠시라도 극락전 안으로 들여다 놓고 싶다.
다시 대웅전 앞마당에 섰다.
비가 추녀 끝에 모이는 것이 보이고,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뒤쪽 산자락에 있는 영산암靈山庵으로 통하는 넓은 마당은 내 신발만큼 젖어 있다.
마당에 나 있는 빗물의 길을 본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이은 극히 일부분이다. 산 짐승이 오가는 길, 바람이 흐르는 길을 우리는 모른다. 벌레가 다니는 길도 모른다. 이런 길들은 가끔 마주치기는 하지만, 같이 가지는 않는다. 마당에 이렇게 물의 길을 드러내듯이, 길들은 한 번씩 흔적을 남긴다. 흐르는 세월에도 길이 있다. 세월 또한 막히면 잠시 머물기도 한다.
영산암으로 가는 돌계단이 젖은 채 나를 위해 길을 내어준다. 그런 길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영산암 우화루雨花樓 앞에 서다.
雨花樓. 오늘 같은 날 어울리는 이름이다. 누각 아래로 통과하며 또다시 줌인(zoom in) 한다. 돌계단을 다 올라갈 때쯤 작은 마당, 석등 하나, 단정한 법당이 눈 속에 들어와 각자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올라오는 입구 옆 작은 꽃밭에 팻말이 놓인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쉿!’
아무도 없고 맑은 고요만 가득하다. 그래, 너였구나.
山神, 七星, 獨聖이 암자 내로 내려와 함께 삼성각에 머문다. 이쯤이 너와의 간격일까.
그 자리, 그 모습이라면 그리하여도 된다.
영산암 앞마당에 서서 앞, 뒤, 왼쪽, 오른쪽 네 방향을 돌아보았다.
작지만 차 있음과 비어 있음에 더하고 뺄 것이 없다.
눈에 담는 것과 마음에 담기는 것이 같다. 어떻게 이곳에는 이런 눈이 열릴 수 있었을까.
일주문一柱門으로 내려가는 길에 금방 세수한 듯 맑고 푸른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절이 좋으니 나무들도 예쁘다.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은 山寺로 드는 첫 번째 문이고, 세상으로 나가는 마지막 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