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그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시원했다
여름휴가를 서울 구경으로 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북촌 한옥마을, 창덕궁과 비원 그리고 경복궁을 일정에 넣었다. 박물관과 궁 그리고 한옥마을을 본다는 설렘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린 후, 지하철을 타고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으로 곧장 향했다.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여름 땡볕 아래를 걸어 박물관 입구에 섰다. 남산타워가 멀리 보인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敬天寺址 十層石塔경천사지십층석탑(국보 86호)이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운다. 이 석탑은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층層마다 다양한 불교 도상(圖像)이 조각되어 있다. 멀리 경기도 경천사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호받기 위해 이곳까지 와서 그런지 피곤해 보인다. 그러나 구석구석에 배인 아름다움은 석탑도 얼마나 황홀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 준다. 이제는 이곳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항상 배치 순서가 그러하듯,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유물부터 둘러본다.
구석기 때는 돌을 깎아 도구를 만들었고, 신석기 때는 흙을 빗어 만들었다. 하나의 큰 전환은 이렇게 단순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것을 지금 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묻어 둘 수도 있고, 또 꺼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암각화 모형과 돌 도구 전시는 세월의 붓으로 덧칠한 현대 작품 같다. 청동기 유물은 파란 녹으로 덮여있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청동기 시대의 기억은 파란색 속에 있다. 파란색은 지워지지 않는다.
부여扶餘/삼한三韓실 유물 본 후 고구려高句麗실로 들어섰다. 강서대묘江西大墓의 청룡, 백호, 주작 그리고 현무를 그린 벽화묘사도壁畵模寫圖 앞을 지날 때는 혹시라도 이들이 깨어나 꿈틀대지 않게,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지났다. 고구려실에서 예쁜 귀걸이 하나 귀에 달고, 백제百濟로 건너왔다. 아무도 모른다. 세월도 쌓여 있으면 이렇게 다른 곳, 다른 세상으로 건너기도 쉽다.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에서 발길이 멈춘다. 예전에 부여박물관에서 처음 마주한 그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아름답다 해야 하나, 황홀하다 해야 하나. 앞에 서면 자세히 보려는 마음가짐도 필요 없다. 눈길을 주는 순간 백제금동대향로가 펼쳐놓은 결계結界에 빠진다. 향로 뚜껑에는 산들이 겹쳐있다. 바위, 산길, 폭포, 호수가 있는 첩첩산중에는 산짐승이 숨어 있고, 날짐승이 날아다니고 있다.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도 들린다. 신선神仙들은 참선參禪에 들어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은 백제 말을 한다. 못 알아들어도 소리는 들린다.
멍하니 앞에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린 후 사진기 속에 모습을 숨겨놓으려고 했으나, 뚜껑 위 봉황이 날아갈 것 같아,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받침대의 용이 승천할 것 같아 담을 수가 없었다. 어쩌란 말인가. 이곳 박물관에서도 만난 반가운 마음에 탑돌이 하듯이 향로 둘레를 몇 번이고 돌고 나니, 뚜껑에 양각된 봉래산의 기운으로 몸이 시원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반가운 만남을 나누고 있는데 주위가 부산하여 돌아보니,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등 푸른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는 목소리가 전시관 안에 생기를 돌게 한다. 집중하기가 힘들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자리를 뜬다.
떠나면서,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부여박물관에서도 보았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하는 세속적 궁금함이 생겼다. 확인을 해 보니 부여박물관의 향로가 진품이란다. 여기에서 이렇게라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보고 싶으면 찾아오면 되고, 미치게 보고 싶으면 네가 있는 곳, 부여로 떠나면 된다.
옆 가야伽倻/伽耶/加耶실로 들어 유물들을 둘러본다. 뿔모양 잔이 참 보기가 좋았다. 그러고 보니 가야를 잊고 있었구나. 계획된, 가야로 가는 여행 일정을 앞당겨야겠다. 이미 만들어 놓은 내 마음속 가야실에다 그곳의 유물들을 빨리 옮겨놓고 싶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한 때 신라新羅를 미친 듯이 그리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국립경주박물관과 신라 경주를 수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여기서 또 다른 신라를 본다는 기대감으로 작은 흥분을 참으며 신라실로 넘어왔다.
신라명품관新羅名品館/Luxuries, Luxury Goods에 들어섰다.
"신라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특별히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네... 저 귀걸이 귀에 걸어봐도 되나요?"
떨리는 내 목소리에도 흔들리는 귀걸이, 누우면 사르르 움직이는 목걸이, 입 가리고 웃을 때 손목에 찰랑거리는 팔찌, 소원 하나쯤은 들어주는 반지 등... 화려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은 바로 알 수 있다.
화려한 신라명품관을 둘러보다 보니, 갑자기 신라 사람, 신라 토우가 보고 싶다.
토우장식항아리(계림로 30호 무덤, 노동동 11호 무덤, 둘 다 국보임)도 보고 싶고,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은 아직도 물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또 신라로 가야겠다.
고려高麗실에 들었다. 고려는 그렇게 익숙하지가 않다. 가끔은 해설사의 설명을 귀동냥하면서 앞사람 따라간다. 역사 공부를 하듯 하니, 맘이 급해져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유리관 안에 놓인 청자 몇 점 앞에서는 잠시 발걸음이 멈춰진다. 곱다. 도자기는 3층 조각∙공예관에서 실컷 볼 작정이다.
저 세상에서도 이 세상과 같이
-서천 추동리 고려시대 무덤-
전시관에 붙어있는 글의 제목이 나를 멈추게 한다. 아, 무덤에 평소 사용하였던 생활용구를 함께 묻었던 것이구나. 고려인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저 세상도 이 세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므로 그릇, 젓가락과 숟가락, 동경, 동전, 자기 그릇이 필요하겠구나. 아마 고려 때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잠시 나들이 나온 것이고, 인연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저세상에서 만나도, 어느 시인이 노래처럼, 이 세상의 삶은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려인들이 그리 했듯이.
날씬한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고려 밥상을 짐작한다. 허기진다.
조선관朝鮮舘으로 넘어오니 글과 그림이 많아진다. 지나면서 붙어 있는 제목과 유물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2층 서화관으로 올라 서예실로 든다. 글씨가 글쓴이의 정신과 인격을 반영한다고 하나 안목이 없어서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 회화실에 드니 보기가 훨씬 펀하다. 추상화 전시실 입구의 안내판에 서니 그림 속의 유함, 꼿꼿함, 열정의 눈빛들이 살아서 못다 한 말을 할 것 같다.
회화실 끝에 사랑방 하나 들여놓고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생활을 엿보게 한다. 방은 깔끔하다. 제자리에 놓인 가구도 크기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모양 또한 정갈하니 잡티 하나 붙을 수 없다.
3층 조각∙공예관.
보고 난 후 혹시라도 쉬이 잊힐까 봐 몇 번을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서게 되는 곳이다. 깨지지 않게 맘속에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다.
백자달항아리. 장독대 정화수에 고인 달, 한 여름밤 몽달귀신이 걸어놓은 당산나무 위 달, 달맞이꽃이 피면서 수리봉 이마까지 당겨놓은 달, 먼바다 청어 떼와 함께 그물로 건져 올린 달, 잠 못 들어 마당에 서서 그리운 님 얼굴을 그려놓고 쳐다보는 달, 그런 야행성 달은 지금 같은 우울증도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름이 백자달항아리다. 항아리 속에서 건져낸 달을 가슴에 품고서, 새어 나오는 달빛을 밟으며 걷고 싶다. 취한 듯 걷고 싶다.
병과 항아리 모양과 새겨진 그림과 문양만으로도 보물이다. 깨어지지 않고 이렇게 오래 남아 주어서 고맙다. 이것도 또 다른 緣이라면 緣이다. 이제는 속을 채울 일은 없을 것이다.
건너편 전시실에도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숨소리조차 흐트러질까 봐 조심스러워진다.
접시, 제기, 필통, 필가(筆架, 붓걸이), 연적硯滴이 살갑게 다가온다. 작다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큰 뜻을 담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저 가까이 두는 것인데도 어찌 이리 자유롭고 예쁘게들 만들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우측 사진의 백자무릎형 연적은 두상이 예쁜 아기의 빡빡머리 같아 쓰다듬어 주고 싶고 또, 살구 향기 나는 비누로 한번 씻겨도 주고 싶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있었던 것들의 겉이나 속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고, 이런 흔적 때문에 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여기 놓인 도자기들은 세월이 흘렀어도 갓 구워 낸 것처럼 깨끗하다. 세월의 때를 말끔히 씻어 놓은 그 정성이 고맙다. 분청사기실에 들어서도 그 대담함과 아름다움에 홀려 쉽게 못 떠난다.
비색청자翡色靑磁. 상감청자象嵌靑磁. 중국에서 왔으나 고려에서 끝을 봤다. 하늘의 색들을 끌어오고 물색을 담고 산색을 풀어놓았다. 잡티 하나 정도는 묻을 수 있는데, 이리도 곱게 세상에 내보냈구나. 상상 속을 드나들면서 본 것을, 손끝은 기억해 내며 공간을 빚고 다듬어 형상화하였고, 눈은 군더더기를 지웠다. 이런 청자 하나를 위하여 긴 시간을 보내면서 굳어진, 고려 도예가의 몸은 청자 탄생 후 흐트러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 앞에 선 나의 몸이 점점 굳어만 간다.
서울 구경 첫째 날, 이렇게 박물관에서 타임머신 타고 수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세월을 거슬러 본 긴 여정이었다. 다 담지 못하여 흘러넘친다. 매듭을 맬 수도 없다. 수천 년을 하루에 담을 수는 없다. 두고두고 찾아오자. 이제 숙소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니 덜컹거린다. 흔들리는 하루였다.
서울 구경_ 첫째 날 끝.
서울 구경_ 둘째/셋째 날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