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_둘째 날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 비원... 더웠다

by 무상행

모처럼 가족이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오전 일정은 북촌 한옥마을이다. 감고당길-북촌길-가희로-계동길로 정한 후 감고당길로 들어섰다.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서 옛길, 한옥과 어울리고 있다. 실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북악산자락이 흘러내려와 그 사이에 골을 이루고, 그 속에 마을이 들어앉고, 또 경복궁과 창덕궁이 좌우에서 경계를 만든다. 이곳은 서울 속에서 지난 것과 변화하는 것이 어우러지며 보존되는 곳이다. 볼 것이 너무 많다. 아침부터 익어 터지는 햇살이 뜨겁지만 길이 있으니 걷는다. 예쁜 꽃가게를 만났다. 그 가게에는 꽃도 팔지만 카네이션 볼펜과 파리지옥도 판다. 이곳은 본다고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만 보여주는 것도 있다. 북촌길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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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그려놓은 지도를 보고서 현 위치와 나아갈 길을 헤아린다. 단정한 길에 광고용 전단지를 붙일 곳이라고는 후미진 곳 철판 밖에 없다. 몇 번 벗겨낸 자국이 보이는 걸 보니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지 알 것 같다. 지금은 ‘나는 사랑하고 너는 노래한다’란 뮤지컬 포스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북촌길에서는 노란 테두리를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우주선이 착륙하고 있는 구멍가게, 옛 형태 그대로 인 가게도 만날 수 있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서 북촌으로 불리게 되었고, 조선말 대규모의 토지가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어 지금같이 어깨가 맞닿은 한옥이 밀집되었다고 한다. 이런 곳은 보물찾기 하듯이 구석구석 꼼꼼히 들춰봐야 하는데, 그런 작은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이렇게 바쁜 걸음으로 밤마실 가듯이 설렁설렁 구경하니 제대로 다 못 볼 수밖에 없다. 저녁 해질 무렵에 북촌길을 걷거나 담벼락 겉에 놓인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해도 참 좋겠다. 길을 걸어도 좋고, 벤치에 앉아서도 좋은 골목이다. 북촌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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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길, 복정길, 삼청동길, 가희동길, 계동길... 서로 끝을 잇고 있는 어느 북촌길이든 몇십 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놓기에는 충분하다. 너무 더운 한여름 낮이어서 북촌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고 관광객만 모여든다. 언덕길 끝에 서서 겹겹이 쌓인 기와지붕과 서울 먼 곳 풍경을 둘러본다. 사진 찍는 이를 위해 북촌 8 경이란 것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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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도로가에 주차된 관광버스는 짐칸 양쪽 문이 활짝 올리고 있다. 운전기사가 그 속에서 오수를 즐긴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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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정은 창덕궁과 후원(비원祕苑) 구경이다. 비원祕苑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공식적으로 후원이라 칭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원後苑보다 비원祕苑이 더 신비스러움을 갖고 있어 더 좋다. Secret Garden, 시크릿 가든. 창덕궁 후원 가는 길은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지나 인정문仁政門을 거처 가야 한다. 인정문에 들어 인정전을 본 후 다시 나와서 낙선재樂善齋를 둘러보고 나서 희정당과 대조전을 지난다. 어느 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다. 여기까지 모든 門은 寶物이고, 殿은 國寶이다. 함양문이 나오면 여기가 후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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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된 개방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열린 쪽문으로 들어가서 주변 경치와 깨끗한 방 내부를 구경하였다. 궁이란 이곳 구석까지 균형과 정갈함이 함께 한다. 시간이 되니 그사이 함께 후원을 둘러볼 사람들이 다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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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숲길 사이를 걷다 보면 부용지芙蓉池 연못과 영화당映花堂 누각이 먼저 반긴다. 연못에는 작은 섬이 하나 떠있고, 그 섬에는 소나무가 부용정 쪽으로 기대어 섬이 떠돌아다니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 경복궁에서 북촌을 거쳐 온 바람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영화당의 모든 창을 들쇠에 매달아 두었다. 영화당의 시원한 먹 오디 빛 마루에 누워 그 바람을 잡았다가 풀었다가 한다. 일행들은 문화해설사를 따라 벌써 주합루를 오르고 있다. 그제야 나도 영화당 마루에서 일어나 주합루 쪽으로 간다. 벌써 일행에게는 혼자 떠도는, 말 안 듣는 사람이 된 지도 모른다. 주합루를 오르는 계단의 질서와 배치가 맘에 든다. 몇 백 년 된 돌계단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풀들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다시 이동하다 보면 담장길이 나오고 금마문金馬門을 지나 안으로 들면 의두합이란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북향 건물이 나온다. 가장 바깥쪽 방 한 칸 건물은 너무 단아하다. 이어진 담장과 그 너머 사계절 따라 변하는 나무의 색과 형태는 느린 정중동을 보여준다. 우리의 담장은 독립의 공간경계이나 조화와 소통의 시간경계이기도 하다.

큰 돌을 깎아 만든 불로문不老門에 들면 애련지愛蓮池와 그 연못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애련정을 볼 수 있다. 애련지에는 잉어들이 주위 나무와 연잎이 물속에 만든 그늘 사이를 한가롭게 노닐며 잔잔한 물결을 만든다.


젊은 남자가 모델 같은 여인을 사진 찍고 있다.

애련지愛蓮池의 프랑스 연인(?).

어떻게 프랑스 사람인지 아느냐 하면 서로 이야기할 때 ‘...므와...봉..숑..쑝..’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니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남자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에는 단청이 잘 되어 있다. (얼굴 모자이크 처리 안 함, Excusez-moi)


또 해설사와 일행을 놓쳤다. 황급히 걸음을 옮겨 장락문長樂門에 들었다. 일행들은 열심히 연경당演慶堂과 선항재善香齋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내 발걸음은 벌써 아름다운 건물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옛 건물은 공간 속에 가두어 놓기를 하기에 좋은 곳이다. 공간 속에다 또 다른 공간들을 중첩하기도 하고, 풍경도 못 움직이게 고정시키고, 건너편 옛 건물을 현재의 시간영역으로 끌어다 놓기도 한다. 이렇게 해 놓으면 언제든지 그 안에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후원에 또 다른 생활공간이 있다는 것은 일상이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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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정자 겹 지붕이 특이한 존덕정尊德亭이 있는 권역에서부터는 해설사와 일행을 잘 따라다녔다. 무더위에 지친 탓도 있지만 나름 잘 마무리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펌우사砭愚榭, 존덕지尊德池, 그리고 취한정翠寒亭을 둘러본 후 언덕길을 따라 후원 가장 안쪽에 있는 옥류천玉流川 개울에 다다랐다. 큰 바위를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물이 돌아 흘러 떨어지게 한 곳이다. 소요암逍遙巖에는 맑은 물과 함께 풍류가 흘렀다. 궁 내 유일하게 초기 지붕을 한 청의정淸漪亭이 있고 그 앞에 논을 만들어 직접 벼를 심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시원하다. 이제 창덕궁 후원을 다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과 다르다. 창덕궁 내 외곽 숲길을 따라 걸었다. 창덕궁昌德宮에 드는 돈화문敦化門이 보인다. 돈화문으로 들어가서 돌아 돈화문 옆길로 나왔다. 창덕궁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다시 되돌아왔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때문에 가족은 숙소에서 쉬고 혼자 이렇게 오후 일정을 마쳤다. 저녁에는 가족과 동대문 시장 구경을 했다. 쏟아져 나온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시끄러웠다. 靜은 없고 動만 있었으나 그 또한 서울의 구경거리였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이야기한 후 피곤한 몸을 누인다. 곧바로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들었다. 그날은 바람이 풍경에 매달리는 소리도, 달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서울 구경_ 둘째 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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