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量壽殿 꽃살문에는 불심 깊은 나비가 앉아 金剛經을 따라 부른다
부석사浮石寺 가는 길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을 들렀다. 입구에서부터 울창한 적송 숲이 세상과 격리된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그곳에서 솔향기에 취한다. 맑은 물 흐르는 죽계천 돌다리를 지나서 취한대에 앉아 잠시 바깥 풍경을 즐겼다.
볼거리 많은 다른 길로 돌아와서 서원 안을 돌아보았다. 유생들의 글 읽던 강당은 텅 비어있고, 기숙사인 지락재至樂齋 창문도 활짝 열려 있다. 모두 조선시대로 떠나고, 마당에는 따가운 햇살만 모여 오글거리고 있다. 큰 키의 소나무 때문에 담장이 낮게 느껴진다. 옆 마실 선비촌도 둘러보았다. 소나무 한그루가 멀리 소백산 자락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다.
부석사浮石寺로 향하였다. 먼 길도 아닌데 마음은 조급하였다, 보고픈 사람을 만나러 가 듯.
일주문一柱門이 부석사浮石寺에 드는 손님을 맞는다. 신라 화엄종찰華嚴宗刹을 알리는 깃발이 펄럭이었을 키 크고 늘씬한 당간지주가 길 한편에 물러서 있다. 담백한 자태다. 寶物이란다.
첫 번째 작은 건물인 천왕문天王門에 들어선다. 어두운 곳에서 사대천왕四大天王이 양쪽에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서 동서남북을 살피며, 사찰에 들 수 없는 객을 가린다. 합장하는 보살 덕인지, 보기보다 맘이 좋은지 모두 통과다. 사찰에 들려면 천왕문 사대천왕을 지나가야 하는 것은 어두운 곳을 지나 밝은 곳으로 나가도록 하면서, 맘을 다스리게 하는 공간의 안배이다. 이제야 사찰에 들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같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계단을 몇 개 오르니 누각이 다가선다. 범종루梵鐘樓다. 누각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이름이 범종루이나 법고, 목어, 운판 만 있을 뿐, 범종은 근처 범종각에 있다. 짐승 중생을 위한 법고法鼓, 물속 중생을 위한 목어木魚, 공중 중생을 위한 운판雲版을 한 곳에 두고 천상과 지옥 중생을 위한 범종梵鐘은 따로 두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해 보려 하나, 풀리지 않는다. 땅의 셈으로 하늘의 셈을 짐작하려고 하니 모를 수밖에.
법고를 매달고 옆으로 누운 대들보에도 뭔가를 그린 것 같은 흔적이 있다. 비어 있어도 좋으나, 무엇인가 있어야 할 곳에는 이렇게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 법고와 목어는 모양과 채색이 아름답고, 서쪽에 걸어놓은 운판이 먼 산 풍경과 잘 어울린다. 범종루 건물방향이 측면으로 앉아 있는 것은 소백산맥을 향해 날아갈 듯 앉아있는 浮石寺 전체를 위한 배려이라 한다. 조금 옆으로 서면 무거움이 가벼워진다.
앞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뒤쪽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은 浮石寺 속 다른 건물과 어울리기 위함이라 한다. 浮石寺를 위해서라면 앞뒤 모습이 달라도 상관없다. 범종루에서는 소리를 보기만 했다. 기다려서 저녁 예불의 법고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언제 내 맘대로 시간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누각을 받치는 기둥은 무거운 무게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힘이 있으며 미끈하다.
어둠 속에 쌓아놓은 풍경소리가 밤하늘로 오르는 길을 찾을 때,
부석사浮石寺는 석등에 불을 밝히고 탑돌이 한다. 천년 하늘을 건너온 선묘 낭자가 잊혀진 신라와 남겨진 신라를 위해 두 손을 모으고 석탑을 돈다. 치마의 금박 봉황 날개 짓에 불빛이 언덕 위 삼성각을 넘나 든다. 석탑 어깨 위로 별들이 내려앉아 향가鄕歌를 부른다. 석등에 새겨진 보살들도 마당으로 내려와 둥글게 돈다. 땅에 끌리는 치마 자락이 오색단청 그림자를 넓게 펴며 따라간다. 고요한 곳에 머물던 바람이 휘모리장단을 밟으며 범종루梵鐘樓로 오른다.
법고法鼓의 울림에 극락보전 창살 위로 꽃이 핀다.
목어木魚의 떨림에 은백색 비늘이 별 부스러기 같이 떨어진다.
운판雲版의 들림에 소리 맑은 산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동범종梵鐘의 무거운 소리에 사미승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달이 또 다른 동쪽을 찾아 서쪽 수미산을 넘고 있다.
하얀 회칠을 한 건물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이렇게 석탑을 앞쪽에 하나 들여다 놓으니 그 또한 잘 어울린다.
석탑은 舍利를 품에 안고 가람의 중심에 서 있다. 아래쪽 기단에는 검버섯 같은 저승꽃이 낡은 무늬로 피고 있다. 기둥 사이에 낀 이끼는 천 년의 틈을 비집고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 층층이 쌓인 돌은 천년세월에 바람 든 무 같이 속이 비어있다. 치켜든 지붕돌 모서리는 석탑을 파란 하늘로 가볍게 들어 올린다.
싸리비질 한 곳에 길게 누운 석탑 그림자 위로 구름이 지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서 있는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하늘이 갑자기 잔뜩 찌푸리듯 흐려진다.
산 쪽으로 돌아서면 멋진 2층 누각이 보인다. 극락에 이르는 입구라는 이름의 안양루安養樓다.
안양루와 안양문이라는 두 개의 현판은 하나의 건물이 누각과 문이라는 두 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안양문 계단을 오르면 석등 하나와 무량수전이 네모난 공간을 줌을 당기 듯 채워온다. 안양루로 걸어 들어간다. 부석사 전각들이 아래로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소백산 자락이 하늘과 맞닿아 펼쳐진다. 안양루는 눈이 감당할 만큼 보다 조금 더 보여준다. 뒤돌아보면 무량수전과 앞마당의 석등이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처럼 조용히 서있다. 안양루는 정靜과 동動 사이에 서있다.
안양루 계단은 아주 느리게 올라야 한다. 석등이 다가오고, 뒤를 이어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오르며,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면서 석등의 위치를 바꾸어 보아야 한다. 무량수전無量壽殿이란 현판 글씨도 석등의 비어 있는 곳에 ‘無量’만 넣어 보기도 하고, ‘無量壽殿’을 다 넣어 보기도 하면서 허락된 시간을 끝까지 써야 한다. 뒷사람이 오면 한편에 물러서서 지나가도록 하고서라도 눈에, 가슴에 새겨야 한다. 지독하지 않으면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무량수전無量壽殿 앞마당에는 석등石燈 하나 두는 것 외에는 텅 비어있다. 절 마당은 어떻게 이렇게 비우면서 또, 채우는지 감탄이 먼저 나온다. 석등 쪽으로 걸어간다. 화려한데도 군살하나 없이 단아하다. 열일곱 번째 나라보물國寶이라 할만하다.
날아갈 듯 한 옥개석, 불빛이 퍼져 나오던 화사석, 4면의 보살들, 팔각기둥이 하대석 연꽃 위에 무게 없이 얹혀있다. 그런 석등이 맞선 나온 처녀처럼 앞마당에 다소곳이 서 있다. 새겨진 연꽃이 석등 발등에 올라서서 곱게 피어있다. 쭉 뻗은 팔각 받침돌의 자태에 내 발걸음은 이미 삐뚤어져 있었다. 비어있는 화사석火舍石 네 면은 風景畵를 하나씩 창에 담고 있다. 새겨진 보살들은 어젯밤에도 앞마당을 걸었을 것이다.
삼층석탑이 마주 보이는 쪽 보살상에 눈이 오랫동안 머문다. 서로 마주 본다. 나는 천 년 전 말을 할 수 없고, 너는 천 년 후 말을 들을 수 없기에 쳐다만 본다. 천년 후 서로 마주 보며 서있다. 잔떨림은 지나가는 바람에 스치는 옷자락 떨림인가.
無量壽殿 계단으로 석등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無量壽殿 꽃살문에는 불심 깊은 나비가 앉아 金剛經을 따라 부른다.
부석사浮石寺 II에서 계속...
부석사浮石寺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