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旅行 3-떠나다

뒤돌아보면 그대로 서 있다, 너는

by 무상행

창호 격자 문틀에 햇살이 고일 때, 독락당獨樂堂 역락제亦樂齊에서 일어났다. 밖을 나와 거닐면서 獨樂堂이 깨어나고, 계정溪亭 앞을 흐르는 계곡물이 빛깔을 되찾는 것을 본다. 솟대에 앉은 나무새가 하늘 빈 곳을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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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먼저 國寶 39호, 나원리羅原理 오층석탑五層石塔을 볼 예정이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마을로 들어섰다. 농로로 조금 가다가 멀리 산 아래에 무엇인가 하얀 것이 얼핏 보였다. 굽이굽이 좁은 길로 계속 가서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들어갔다. 하얀 石塔이 확 달려 나와 반기는 것 같이, 가까이 다가선다. 조금 전에 본 그것이다. 안겨오는 순백의 몸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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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리 오층석탑 그리고 독락당 가는 입구 마을 길에서


나도 모르게 먼저 감탄의 소리부터 나온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千年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귀가,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뿌옇게 습기가 찬다. 천천히 곁으로 다가가 둘러보고, 떨리는 손을 네 순백의 몸에 대어 본다. 세월도 나이를 먹는데, 너는 이끼도 끼지 않았구나. 네 앞에 서면 나도, 너도 우리의 시간은 정지된다. 너는 千年을 건너오고, 나는 千年을 건너간다. 내게 속삭인다.

떠나지 마세요.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가지 못할 거예요.

慶州 시내로 들어와, 늦은 아침 식사를 한 후 新羅 초기 왕들의 무덤인 五陵에 들렀다. 홍살문을 통해 들어서니 五陵은 잘 정돈되어 있다. 부드러운 곡선들이 잘 살아 있는 陵이다. 관람객이 없으니, 답답할 정도로 고요하기까지 하다. 그런 적막감에 몸이 굳어질 것 같아, 어제 南山에 남겨놓은 것들을 찾으러 가려고 서둘러 돌아 나왔다.


3-3.png 오릉과 佛谷 마애여래좌상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쪽 돌아가마 됩니더’ ‘얼마나 걸립니까?’ ‘쪼오끔만 가마 됩니더, 금방 입니더’

佛谷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까지 돌아돌아 한 이십여 분 걸리는 경주 사람들의 방향이고 거리이다. 경주에서는 마애여래좌상을 할매 부처라 한다. 큰 바위 속에 곱게도 앉아 있다. 부처 골 좁은 등고선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속삭인다. ‘와 또 올라왔능교, 할매요. 인자 고마 내려가입시더. 안그라마 돌부처 됩니더‘.


3-4.png 塔谷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남산자락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塔谷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이다. 나름대로 길을 잡고서 塔谷을 한참 올랐다. 갈수록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 점점 불안해진다. 고집스럽게 한 30여 분을 오르니 또 다른 주위풍경이 펼쳐진다. 삼나무 군락지다. 계속 오를까 말까 서성대다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찾기로 했다. 입구에서 옥룡암玉龍庵 쪽으로 접어드니 바로 안내판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마애불상군이 있었다. 큰 바위 4면에 그려놓은 木塔, 飛天像, 승려상, 보살상, 부처, 나무들을 숨은 그림 찾듯이 하나하나 찾아보려고 했으나, 아래쪽은 전부 망에 가려져 있다. 공사 중이다. 망 사이로 나마 선들을 엿보면서, 복원해 본다.(후에 다시 찾았다) 佛心 깊은 누가 이런 기발한 발상을 여기에다 풀어놓은 것일까. 망이 안 처진 남쪽 면을 보려고 좁은 옆길을 돌아 三層石塔이 놓인 언덕에 선다. 소나무 숲에서는 비구니와 보살들이 빙 둘러앉아 명상 중이다.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발뒤꿈치를 들고 남쪽 바위 곁으로 다가간다. 삼존불부터 또 다른 부처들까지 많이도 새겨 놓았다.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보나 자꾸 틀린다. 그러다가 아래쪽 좁은 바위 면에 숨겨진 승려상僧侶像을 보았다. 하, 이런 곳에도 잘도 숨겨 놓았구나. ’自畵像은 아닐까 ‘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돌아보면 볼수록 좋다. 조금 떨어져 있는 三層石塔 또한 잘 어울려 보기 좋다. 돌아 나오니 명상을 끝낸 보살들이 茶 공양을 한다. 먼저 오늘의 대표가 佛像 앞에 차를 올린 후 서로 茶를 나눈다. 그곳에는 움직임만 있고 소리는 없었다. 無聲映畵 같은 장면들만 흐른다. 다시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내려왔다. 기다려라. 다시 올 때는 더 은밀히 다가서리라.


3-5.png 경주국립박물관 입구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일행과 다시 합류했다. 한 뜸 한 뜸 바느질하듯이 꼼꼼히 제대로 한번 돌아볼 생각이었다. 입구 왼쪽에 놓인 석조불두石造佛頭, 석조관음보살입상石造觀音菩薩立像, 石造佛立像 그리고 단아한 언덕 위 三層石塔을 보고 나서, 성덕대왕신종神鍾을 보려고 길을 건넌다. 길가 잔디에는 숭복사崇福寺 비석 받침인 쌍 거북이가 아직도 바다로 가고 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 새겨진 무늬가 신비롭다. 갑자기 주위가 부산하다. 현장학습 온 유치원생과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이 몰려온다. 피해 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처럼 갑자기 막막하다. 방향을 바꾸어 미술관부터 찾기로 한다.

3-6.png 경주 박물관 뜰에서 본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여기서도 참 곱다. 그래서 좋다


뜰에 놓인 다보탑과 석가탑 앞에 서서, 그저께 佛國寺의 감흥을 다시 느껴본다. 佛國寺 다보탑과 석가탑을 千年 후에 따라 만들었고, 같은 걸음의 거리로 마주 보게 세워 놓았다. 佛國寺 다보탑과 석가탑하고는 분명 다르다. 千 年 비바람을 겪어야 생기는 거친 생채기는 없다. 千年 외로움을 겪어야 생기는 깊은 우울증도 없다. 사바세계娑婆世界(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불교)에 구현된 화엄장엄華嚴莊嚴의 세계를 펼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화강암은 하얀 속살만큼이나 말랑말랑하다. 그러나 어디에, 어느 곳에 놓여있든 그 모습은 참 아름답다. 곁에 서 있는 소나무 줄기에서는 해마다 곡선이 조금씩 자란다. 고선사지高仙寺址 三層石塔도 뜰 한쪽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운다.


박물관 안에서는, 세월도 신라 같이 나이를 먹는다. 미술관으로 든다. 많은 불교 미술품을 즐긴다. 미술관 2층 연꽃무늬 창을 통해 뜰 안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내려다본다. 길어지는 그들의 그림자는 허물 벗 듯, 돌의 무게를 뜰에다 내려놓고 있다. 경주박물관의 다보탑과 석가탑 앞에서는 佛國寺 다보탑과 석가탑을 이야기해도 괜찮다. 그들도 가끔은 佛國寺에 들러, 흐트러지지 않음을 배우면서 닮으려고 한다. 세월의 크기나 흔적의 두께는 잊고 아름다움만을 즐기자, 다 채우지 못한 이는 결국 佛國寺로 향할지라도.

3-7.png 窓 아무래도 올라갈 것 같다. 그리고 뭔가 깰 것 같다 석굴암 부처님이 찾으시던데~


박물관에서 마지막에 보려고 눈길도 주지 않고 숨겨두었던, 국보나 보물은 아님, 천년의 미소(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 앞에 선다. 다른 수막새같이 연꽃이나 가릉빈가(迦陵頻伽, 극락정토의 설산에 사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를 새길 수도 있었으나, 떠나간 임이 돌아오면 반길 마음에 미소를 새겼으리라. 기다리다 잠들고, 또 깨어나다 잠들고, 그러다가 千年 후 깨어보니 미소 한쪽이 초엿새 달만큼 떨어져 나갔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깨어지는 것이 나았다, 사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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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마주 서서 쳐다본다. 멈추어진 시간 속으로 어둠이 소리 없이 스며든다.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 만큼 세월이 곰삭았는데, 그리움은 아직도 체한 통증같이 가슴에 남아있다. 緣과 因은 三界와 六道를 돌 때마다 전이된다. 천년의 미소는 천년동안 펼쳐놓은 마법의 결계結界에 갇혀있다. 그 결계지結界地는 어두운 밤이었다. 천년의 미소는 그 마법의 어둠 속으로 밤 나들이 나선다. 나도 조심스레 따라간다. 다보탑 옥개석 지붕에 누워 있던 별빛이 따라온다. 천년의 미소는 숨겨 놓아도 찾을 수 있는 익숙한 길, 고고관 계단을 올라 신라실로 들어간다.


千年을 깨우는 어린 목소리들로 가득 찬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3분만 참으면 된다


3-9.png 토우와 삼채뼈항아리

천년의 미소는 토우土偶 들과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新羅를 이야기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의 悲歌를 듣는다. 미소를 가리고 서 있는 여인 토우의 내민 발등에 손끝을 닿아본다. 그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 놓인 금관의 달개가 파르르 떨린다. 삼채뼈항아리 속에서는 還生을 꿈꾸는 新羅 뼈 조각이 千年 문틈에 낀 동아줄을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잡아당긴다. 토우달린목항아리 입구까지 기어오른 개구리는 뒷다리를 문 뱀 때문에 아직도 안압지로 가지 못하고 있다.

3-10.png 新羅는 환생을 꿈꾸며 옹기 속에 뼈를 담았다, 환생할 때는 금귀걸이 귀에 달고...


수리봉 위 걸린 달이 강물에 떠내려갈 때쯤이면 천년의 미소는 마법이 풀리기 전에 되돌아가야 한다. 고고관을 나선다. 풀벌레 소리가 습기같이 옷에 달라붙는다. 앞서간 바람은 성덕대왕신종 飛天像 구름에 숨는다. 천년의 미소는 밤새 지친 갈증에 석빙고 얼음이 생각났으나, 담장 境界 밖의 일이다. 잊지 않으려고 般若心經 끝 구절을 중얼거린다. 천년의 미소는 다시 미술관 안으로, 있어야 할 곳으로 들어간다.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1층 불교미술 1실 유물번호 경주 1564.

그놈의 回歸本能, 사랑 같은.


남겨진 新羅.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마지막 일정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남은 新羅를 둘러본다.


빈터만 남은 黃龍寺를 찾았다. 新羅는 아직도 사라진 黃龍寺 구 층 목탑의 기억을 뒤지고 있고, 그 곁에는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가을 오후 햇살에 醉하여 서 있다. 두고 가는 것이 자꾸 늘어나는 만큼 가을 낮 길이는 짧아지고 있다. 계림鷄林으로 들었다. 한로寒露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게으름 피우는 가을 단풍은 이제야 나뭇가지 끝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계림과 연결된 내물왕릉奈勿王陵은 넓은 곳에서 편히 누워있고, 그 위로 하얀 양떼구름이 하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계림을 돌아 나와 첨성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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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앞에서 新羅를 생각한다.


일 년, 12 달, 4 계절, 24 節氣를 헤아리는 것은 하늘의 셈만이 아니다. 新羅의 첨성대는 하늘 속을 드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서서, 땅의 셈으로 씨 뿌릴 때와 거둘 때를 선덕여왕께 알렸다. 달무리가 지면 비가 내린다는 것도 첨성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첨성대의 일기예보는 생각날 때마다 대충 알려지는 소문 같은 것이었으나, 新羅 사람들은 잘 새겨들었다. 그래서 밤하늘이 아주 맑으면 큰 서리가 온다는 것쯤은 쉽게 알았다. 新羅의 東西南北, 四方을 찾아주는 곳도 첨성대였다. 심심하던 첨성대 근무자가 가끔 별을 보고 사랑을 점占치기도 했으나, 그리 정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밤이면 첨성대 남쪽 窓으로 별자리가 들어오고, 달도 빈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구름도 달의 인력引力에 끌려 들어오고, 바람도 별 사이에 묻어 들어왔다. 제자리를 기억하지 못한 풀씨도, 떠돌이별도 따라 들어와 잠시 머물다 갔다. 첨성대는 풀독이 올라도 境界 없는 풀밭에 서 있었던 그때가 좋았다. 그런 첨성대는 이제 귀뚜라미 집이 된 지 오래다. 은밀히 첨성대 안으로 들어가, 쌓인 돌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를 이두문자吏讀文字로 적힌 아름다운 新羅의 별자리 이름을 찾고 싶다. 첨성대는 별점으로 千年 후 이렇게 新羅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 新羅의 별점은 미래를 보는 것이다.

밤새 하늘만 보다가 아직도 곤히 잠든 첨성대를 두고 조심스레 나왔다. 가을 잠자리가 첨성대 주위를 돌면서 쌓은 돌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다.

新羅 旅行 마지막 목적지인 대릉원大陵苑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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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大陵苑으로 가는 길에는, 멀리 서너 개의 陵이 울타리 없는 곳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누워 있고, 뒤에서 이들을 품은 산들이 큰 陵같이 엎드려 있다. 봉우리들의 빛깔은 뒤로 멀어질수록 점점 흐릿해진다. 대릉원에 들었다. 매표소를 지나 산책길을 걷는다. 陵들이 여기저기 자유로이 흩어져 있다. 황남대총皇南大冢은 속에 든 보물을 다 내어주고는, 커다란 몸을 뒤척이며 편하게 자리 잡고 누워이다. 또 다른 울타리 속의 미추왕릉味鄒王凌은 옆 대나무 숲에서 소곤대는 이야기를 무심히 바람에 실어 보낸다. 천마총天馬冢은 열어놓은 문으로 누가 걸어 들어오는지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구름 개수만 세고 있다. 이렇게들 편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니, 세월 헤아리는 것을 잊을 만도 하다. 還生도 잊은 지 아주 오래다. 딱히 그럴 일도 없는데 나만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다. 바람이 불 때마다 陵 안에 숨겨진 금귀걸이 달개가 딸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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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新羅旅行이 끝났다. 나이가 들수록 여독이 오래간다. 그만큼 新羅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길어진다. 세월이 흐른 후 언젠가 또다시 新羅千年이 그리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皇南大冢 같이 밤새 엎드려 울어야 하나.


이렇게 新羅旅行이 끝났다. 이렇게 新羅旅行이 끝났다. 이렇게 新羅旅行이 끝났다.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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