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旅行 2-머물다

마주 보고 서있다, 우리는

by 무상행

서악서원西岳書院에서 여행 첫날, 하룻밤을 지냈다. 지난밤에 별똥별 하나가 토함산吐含山 쪽으로 떨어져서 新羅 밤하늘에 별 하나가 빈 것 말고는, 밤새 아무런 일도 없었다. 西岳書院 곁에 있는 무열왕릉武烈王陵과 서악동 고분군古墳群으로 가는 것으로 新羅를 찾는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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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산책하듯 가볍게 걸어 들어간다. 입구의 陵碑에는 큰 거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용을 등에 올려놓고 있다. 武烈王陵무열왕릉은 밤새 모아둔 이슬을 이른 아침 햇살에 말리고 있고, 담장 같이 둘러싼 소나무의 그림자들이 王陵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적당한 크기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무열왕릉 뒤쪽에는 서악동 고분군이 연결되어 있다. 4기의 陵은 무열왕릉보다 크기가 크기도하지만, 선도산仙桃山에서 흘러내린 구릉에 놓여있어서 그런지 더 크게 보인다. 하얗게 핀 가을꽃이 동산 같은 陵을 오르고 있다. 크고 시원한 모습이 보기 좋다. 바람이 침묵처럼 흐른다.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법흥왕릉法興王陵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법흥왕은 新羅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완성하였으며, 佛敎를 국가종교로 이념적 기틀을 마련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으므로 대단한 陵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陵의 이정표를 따라 이어진 좁은 논길로 가는 내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작은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두고, 소나무가 가려진 좁은 산길을 가다 보니 멀리 작은 陵이 보인다. 작고 아름답다. 주위에 빼곡히 들어찬 소나무는 경계구분 없이 자유롭게 陵 주위를 드나들고 있다. 소나무 그림자 하나가 陵위에 길게 드러누워 시간의 길이를 재고 있다. 소나무의 껍질 갈라진 곳에는 파란 이끼가 千年세월의 시간 틈을 메우고 있다. 발걸음이 쉬이 닿지 않는 곳이라 적막하다. 자유로운 조용함을 찾아 떠나온 사람에게 자리 하나 내어 주는 그런 陵이다. 한번 앉으면 떠나기 싫은 그런 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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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나오는 길 양쪽은 아침햇살로 노랗게 빤짝거린다. 눈이 부시다. 新羅 마을 어디 石塔 하나 없는 곳이 없다. 내친김에 근처에 있는 효현리 삼층석탑三層石塔을 보려고 마을 길로 들어섰다. 주차하고 나니 옆에는 소를 키우는 곳이었다. 귀에 노란 출생등록증을 붙이고 있는 소들이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내게로 다가온다. 한번 쓰다듬어 주니, 큰 눈을 껌벅이며 가만히 서있다. 法興王이 죽기 전까지 승려로 불도를 닦았다는 애공사哀公寺가 있었던 자리라 한다. 혹시 이곳 소들은 그때 들은 반야심경般若心經 한 구절을 아직도 잊지 않으려고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입을 쉴 새 없이 우물거린다.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담장 위를 지나가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니 언덕에 三層石塔이 보인다. 三層石塔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곁에 서 있었다. 나만 몰랐다. 新羅 안에 서 있어야 보인다는 것을 나만 몰랐다.


남산 치맛자락에 수 놓여 있는 佛像들을 찾아갈 旅程이 지체되고 있다. 조급한 욕심이 新羅旅行은 느리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서 나간다. 千年을, 新羅를 관觀하는 것이 아니라 견見이라도 하려고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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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山 봉화골에 있는 칠불암七佛痷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만난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의 안내표시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렇다면 보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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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릉憲康王陵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길은 파란 이끼가 낀 흙길이다. 헌강왕 때 新羅에서는 처용무處容舞가 유행하고 사치와 향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나, 헌강왕의 陵만은 정갈하다. 꼭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고, 찾는 이 없어도 항상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陵 같다. 陵 주위 소나무 숲도 딱 그만큼 어우러져 있다. 陵은 소나무의 짙은 그림자를 등에 얹혀놓고,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다. 빗질이 잘된 길을 걸어 나와, 옆에 있는 정강왕릉定康王陵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小路는 양쪽 소나무 그림자로 덮여 있고, 햇빛이 밝은 무늬로 드문드문 길에 뿌려져 있다. 정강왕의 陵은 벌초를 너무 많이 하였는지 虛 하나, 봉분 위로는 소나무 싹이 많이 자라고 있다.


王陵을 만든 이유는 뭘까? 산길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무덤처럼 일 년에 한 번쯤 잔을 받아보고 싶어서 누워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환생이었을까? 지금은 헌강왕릉憲康王陵도, 정강왕릉定康王陵도 환생을 잊어버릴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 것이다. 천년이 훨씬 지난 후 마주한 이에게도 환생은 부질없어 보인다. 오늘같이 조금은 적막해도 편하게 누워 햇볕을 쬐며, 바람이 전하는 서라벌 저잣거리 소문을 즐기는 王陵의 모습이 좋다. 王陵 주위를 감싸고도는 소나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인상적이다. 新羅에는 陵도 길도 같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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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연못 서출지書出池에서 잠시 쉬어갔다. 연못으로 걸어 들어온 이락당二樂堂 누마루 곁에서 서출지를 본다. 햇살은 아삭아삭한 연근蓮根 빈속을 들락거리고, 잠자리는 마른 연꽃 대를 똑바로 세우고 있다. 蓮이 없는 연못 안 빈 곳은 파란 하늘이 채워져 있다. 한쪽에서는 젊은 화가들이 가을 햇살에 잘 익고 있는 서출지를 수채화 속에 담고 있다. 나에게는 화가를 포함한 풍경이 수채화 한 폭이었다. 근처에 있는 두 개의 南山里 三層石塔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에 서서, 말없이 마주 보기만 한다. 수천 겁劫 세월이 흐르면 서로의 그림자라도 닿을 수 있다. 그런 게 新羅만의 셈법이고, 新羅의 사랑이다.


2-6.png 칠불암七佛痷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칠불암七佛痷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을 찾아가는 산길은 즐기면서 걷기에 좋다. 조금 힘든 가파른 길이다 싶으니, 멀리 마애불상군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올랐다. 부처가 많이도 모여 있다. 병풍바위에 기대어 서있는 삼존불三尊佛이 사각 돌기둥에 새긴 四方石佛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여 내 귀를 활짝 연다. 귀를 아무리 열어도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法句經 한 줄 모르니 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삼존불과 마주한 石佛이 화두話頭를 이야기하고, 다른 세 방향 石佛들은 듣는다. 마주한 石佛이 깨달음을 얻으면 돌아앉아 다른 石佛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깨달음은 찰나刹那일 수도 있고, 삼천 겁劫일 수도 있다. 앞쪽 산이 가까이 다가선다. 일곱 石佛 앞으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아니더라. 아무것도 없더라.


항상 그러하듯이 내려가는 길은 쉽다. 新羅가 南山에 펼쳐놓은 결계지結界地를 쉬이 빠져나왔다. 마을에 다다르니 나무 하나가 빨갛게 醉한 채 햇살 속에 서있고, 고추잠자리가 마른 나뭇가지를 땅에 꽂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달의 박피薄皮 같은 나비 날개 하나가 나는 법을 잊지 않으려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南山을 돌아 반대쪽 배리삼릉拜里三稜을 찾았다. 다시 新羅가 南山에 펼쳐놓은 결계지에 든다.

2-7.png 南山 佛像

배리삼릉拜里三稜은 내려올 때 보려고 남겨두고, 山부터 올랐다. 불두佛頭가 없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부터 만난다. 돌로 가사의 주름까지 선명하게 잡았다. 이런 것이 新羅 사람들의 솜씨다. 南山 어딘가에 있을 사라진 佛頭를 생각하니 안타깝다.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이 기다리고 있다. 붉은색이 남아있는 미소가 가을 햇살같이 따뜻하다. 조금 더 오르면 여섯 분의 부처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이다. 서 있고, 앉아 있고, 엎드려 있고... 살아 움직인다. 옆에 붙어 서면, 그 속에 빨려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본다. 조금 더 가면 삼릉계 석불좌상石佛坐像이 맞이한다. 2007∼2008년에 얼굴과 광배를 보수∙정비하였다고 적혀 있다. 즉 성형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지금 석불좌상은 잘 생겼다. 이전 신라 때 석불좌상은 쉽게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생김새였다고 하니, 연화대좌에 내려와 마을을 돌아다녀도 누가 부처인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내 눈에는 사진으로 본 before가 지금 실물의 after보다 더 정이 간다. 섣불리 얼굴에 손댈 일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다. 다음에 본 선각여래좌상線刻如來坐像은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아직은 조금 부족하여 위에 있는 바위까지 뜨지는 않았다. 모든 게 자유롭다, 부처도, 석공의 솜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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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치맛자락에는 石塔, 佛像이 금박처럼 수놓아져 있다. 찾지 않아도 있어야 할 곳, 보여야 할 곳에 있다. 新羅, 그때에는 石塔 하나 세우는 것, 佛像 하나 만드는 것, 바위에 부처 하나 새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흩어진 돌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三層石塔이 된다. 돌을 깎기만 해도 부처가 돌 부스러기를 털며 앉아 佛像이 된다. 훤히 보이는 흔적을 따라 그리기만 해도 바위 속에 부처가 앉고, 木塔이 서고, 연꽃이 피어난다. 新羅, 그때에는 화엄경華嚴經 한 줄 몰라도 되는 참 쉬운 일이었다. 상선암上禪庵 까지만 간 후 내려와 남겨두었던 三稜을 보았다. 三稜은 석양빛과 소나무 그림자로 뒤덮여 눈부시다. 돌아본 신라 陵 뒤편에는 항상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도 다르지 않다. 어두워지려니 결계를 치듯 주위 소나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방해가 될 것 같아 서둘러 나왔다. 가을햇볕에 잘 마른 어둠이 신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와, 멀리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지워내고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남산에 흩어진 佛像들을 내 마음속 앞마당에다 차곡차곡 들여다 놓았다.


2-9.png 독락당獨樂堂

오늘은 홀로 즐기는 집인,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獨樂堂에 머물기로 했다. 조선시대 건축물로, 보물 제413호이다. 보물 속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이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 후, 솟을대문을 지나 역락제亦樂齋에 여장을 풀었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종갓집이다. 메밀 차를 한잔 대접받는 자리에서 종갓집 음식 이야기가 나왔다. 宗婦는 '음식은 자랑할 것이 없고, 술은 30년 이상 빚어왔다'면서 맛보라고 술을 내어온다. 술을 못 마시는 나는 향기에 醉 한 후 숙소인 방으로 나선다.


좁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때의 新羅를 생각한다.


그때는 돌이나 바위가 굳어지기 전 이어서 누구나 石塔도, 石燈도, 佛像도 너무 쉽게 잘들 만들었고, 그것들은 산과 들로 다니며 스스로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는 나무의 나이테가 아주 촘촘하게 들어차서, 겨울나는 애벌레가 가려운 등을 비벼대기는 비좁았다. 그러나 나무에 한 번 새긴 기억은 수천 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으니, 그런 나무로 만든 풍경風磬은 산사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만 해도 스스로 풍경소리를 냈다.

그때는 어려운 말이나 글이 있을 이유가 없어서 바람이 전하는 소문에 새가 알에서 깨어나고, 꽃도 피었다. 여름 밤하늘의 銀河水에 큰 물이 넘치기만 해도 냇가의 돌은 알아서 떠내려왔다.

그때는 흰 천마 한 마리가 천마총을 날아올라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이 첨성대瞻星臺에서 바로 관측되었으나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때 그런 것은 新羅 하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때는 하늘이 땅 가까이에 내려와 있었다. 별이 너무 많아 죽어도 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귀신으로 新羅 땅을 밟고 있어도 누구 하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사람도, 또 그런 귀신도 하늘을 기웃거리며 떠날 때와 머무를 곳을 잘도 헤아렸다.

그때는 지금 같이 그리움에 허기가 지는 일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노란 달맞이꽃이 피어, 吐含山에 뜬 달을 독락당獨樂堂까지 데려왔다.

이렇게 내 마음까지 헤아리니 고맙다.


(‘신라에 머물다/떠나다’ 끝. '신라를 떠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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