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곳에 있기만 해라, 내가 간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新羅 능陵이 보고 싶고, 그 속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거리는 금귀고리 달개 소리도 듣고 싶다. 新羅에서는 흔했던 石塔과 佛像 앞에 서서 쌓인 千年의 무게를 같이 하고 싶고, 그곳에 고여있는 新羅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싶다. 新羅 寺刹 앞마당의 싸리 빗질 흔적 보고 싶고, 新羅 사람들과 塔돌이 하고 싶다. 이두吏讀 문자로 적힌 아름다운 新羅 별자리도 찾고 싶다. 그래서 떠났다. 그런 新羅가 보고 싶어서 慶州로 떠났다.
먼저 외동읍 괘릉掛陵(신라 제38대 원성왕릉元聖王陵으로 추정)을 찾는다. 갖출 것 다 갖춘 유일한 陵이라 한다. 陵에 다가가려면 生者로 死者의 영역을 드는 경계인 두 개의 화표석華表石을 지나야 한다. 힘 좋게 생긴 두 외국 용병 力士가 지키는 武人石 앞에서는 몸에 든 쇠붙이는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文人石을 지나면서는 혹시라도 말을 걸 줄 모르니 新羅語를 모르면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좌우 양쪽에서 각자 맡은 四方을 경계하는 돌사자 네 마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오는지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이 모든 통과의례를 무사히 거치면 똑바로 걷기만 해도 陵에 닿는다. 한 번쯤은 지나 온 침묵하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기 위해서 뒤돌아보아야 한다.
陵 앞에는 상석床石이 놓여있고 원형봉분 주위는 돌울타리가 둘러 저 있다. 화강암 울타리에는 마른 이끼가 검버섯 무늬같이 곱게 박혀 있다. 十二支像이 봉분 아래를 감싸고 있다. 十二支像은 어느 하나 허투루 새겨지지 않아 지금 還生하더라도 울음을 울고, 기어 다니고, 귀를 쫑긋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울타리 난간에 기대어 귀 기울여 본다. 적막, 환생은 없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높고, 물고기 비늘 같은 구름이 山을 넘어온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서는 바람이 가을 햇살에 몸을 비빌 때마다 이는 노란 물결이 토함산 자락까지 번져간다. 눈부시다. 돌울타리에 앉은 잠자리도 얇은 날개를 말리는 듯 넓게 펴고 쉬어간다.
이곳에는 항상 두 가지가 있다.
精과 動, 拘束과 自由, 生과 滅, 滿과 虛.
돌아 나오는 길은 항상 공복감을 느끼는 것 같이 허전하였다. 괘릉에서 돌아 나올 때는 다시 화표석을 지났다고 死者의 영역이 끝난 것이 아니다. 쉽게 지나가 버린 것으로 여기지 않을 마음으로 뒤돌아본다. 이번 여행에서는 많은 陵, 佛像, 石塔뿐만 아니라 신라의 하찮은 것들까지 차곡차곡 마음속에 들여다 놓을 생각이다. 이제 마음속에 陵 하나 들여다 놓는다. 무겁지 않다. 王陵 옆 소나무 숲길로 걸어 들어간다. 소나무 뿌리의 뿔끈 솟은 힘줄들이 흙 밖으로 튀어나와 길의 질감을 거칠게 한다. 소나무 숲은 王陵 위를 휘감아 돈다. 서로 비스듬히 뒤엉켜 있는 소나무들은 꿈틀대는 듯하다. 精과 動의 드나듦도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나도 그 속에서 굳어진 듯 서 있으나, 움직이고 있었다.
괘릉을 나오니 왼편 길이 좋아 보여서 돌아갔다. 조용하고 아름답다. 이런 길은 걷기만 해도 한나절 정도는 쉽게 보낼 것 같다. 여유 있는 여행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앞에 펼쳐있어도 다 즐기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항상 아쉽다.
볼 것 많은 불국사佛國寺로 향하고 있다. 佛國寺란 이름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는 욕심이 앞선다. 佛國寺도 내게 많은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그리워할 만큼만 보고 왔으면 좋겠다. 입구에 佛國寺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려놓은 조감도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다.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사람이 붐비는 해탈교로 들지 않고 연못 주위를 돌아 天王門을 지난다. 넓은 佛國寺 앞마당에 서니 수많은 사진과 그림에서 보아오던 佛國寺 전경이 펼쳐진다. 약간 들뜬 마음을 진정하면서 마당 왼쪽의 당간지주幢竿支柱부터 본다. 新羅 때처럼 당간지주에 깃발이라도 걸려 펄럭거렸으면, 겨우 다스려 놓은 마음이 또 제 멋대로 뛰었으리라. 한참 동안 바로 들지 못하고 곁눈질을 하면서 주위를 서성댄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섣불리 들지 마라. 佛國寺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보여 주려고 한다.
앞마당에 다시 선다. 그리고 다가간다. 막혀 있어 걸을 수는 없으니, 눈 감고 몇 번이나 연화교蓮華橋와 칠보교七寶橋를 지나 안양문安養門으로,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지나 자하문紫霞門으로 오르내린다. 新羅 때처럼 계단에 놓인 연꽃잎 위로 칠보석을 밟으며, 푸른 구름 위로 흰 구름을 타고서 경내로 드나드는 상상만으로도 좋다. 이곳에서는 너도 없고, 나도 없다. 境界도 없다. 新羅, 그때는 여름 소나기가 내린 어느 날에 안양문에 서면 분황사 당간지주에 걸린 무지개를 볼 수 있었고, 자하문에 서면 석굴암石窟庵 보살상이 널어놓은 하얀 빨래가 파란 하늘 물이 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기림사祇林寺 꽃살문에서 날려 보내는 잘 여문 꽃씨를 바람에 받을 수 있었다. 불국사 입구에 들었을 뿐인데, 벌써 하늘 그물에 갇혀 新羅를 드나들고 있다. 경내로 드는 길에서 누구나 갈증을 느낄만한 곳으로 흐르는 감로수로 목을 축인다.
좌경루左經樓 쪽으로 돌아 경내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탑 하나가 먼저 앞을 가득 채운다. 앞마당을 지나면서 본 정경의 황홀함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잠시 걷는 여유를 허락한 뒤 나타나는 다보탑多寶塔에 탄성이 절로 난다. 손끝이 만들어낸 극치 美.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건너편 서쪽 탑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석가탑釋迦塔이다. 무엇을 더 할 수도 뺄 수도 없이 가슴속에 오래 남는 담백한 美다. 참 좋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거리로 서 있다. 마당 가운데 石燈은 다보탑과 석가탑 중앙에 서 있다. 그때는 이곳에 불 밝히고 밤새도록 탑돌이 하였으리라. 石燈 빈 곳에다 大雄殿 안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을 들여다 놓고 본다.
대웅전大雄殿으로 오르는 계단은 정갈하고, 대웅전 단청도 적당히 퇴색되어 아름답다. 大雄殿에 숨겨진 것과 주위의 어울림도 천천히 살펴본다. 뒤편에 있는, 경론을 강설하던 무설전無說殿을 둘러보면서 無說의 의미를 되새겨보나, 그 뜻에 닿을 수가 없다. 돌계단을 올라 佛國寺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관음전을 보고, 옆 계단을 내려가 비로전과 사리탑을 둘러본다. 그리고 또 다른 쪽 계단을 내려가 나한전에 든다. 佛國寺에는 계단이 참 많다. 전각들이 통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吐含山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佛國寺 고요한 곳에서 쉬어가려고 해도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돌담도 몇 번 돌아야 한다. 그런 쉬어가는 바람이라도 한 자락 잡고 新羅 이야기를 듣고 싶다.
佛國寺에 들 때는 一柱門이었으나, 날 때는 不二門이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둘이 아니더라. 佛國寺에서 본 많은 것을 마음속에 들여다 놓았으나 흩어진 채로 있다. 그냥 흐트러진 대로 놔두면 세월이 제 자리를 찾아 줄 것이라 알고 있으나, 오래되면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내친김에 절집을 하나 더 보려고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祈林寺로 향했다.
다른 절집에 들 때와 같이 一柱門과 天王門을 지나, 겹처마 맞배지붕의 넓은 건물인 진남루鎭南樓를 마주했다. 창을 닫으면 바깥 풍경을 은은히 남기며 지우는 나무窓이라 보기가 좋다. 다가서니 열어 놓은 窓에 대적광전大寂光殿 현판이 들어온다. 발뒤꿈치를 들고 서거나 몸을 낮게 할 때마다, 窓에는 대적광전 안 삼존불상과 꽃살문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오른쪽 窓에는 보리수나무가 꽉 들어차 있고, 왼쪽 窓에는 사방 귀퉁이가 무뎌지고 층층 어깨마다 이끼를 올려놓은 三層石塔이 자리한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窓 밖의 움직이는 풍경을 즐긴다. 비어 있는 대적광전 앞 흙 마당이 窓 따라 움직인다. 마당 빈 곳에 서고 싶어 진남루를 돌아 경내로 든다. 나무窓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벌써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넓은 마당이 시원하다. 단층을 하지 않은 전각殿閣들이 참 곱다. 큰 보리수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흙 마당에 묻어두었던 푸르른 그림자를 조금씩 마당에 꺼내 놓는다. 단정히 서 있는 三層石塔에 다가간다. 千年세월에 퇴색한 빛깔의 검버섯이 피어있는 층층이 쌓인 돌은 천년세월에 바람 든 무 같이 속이 비어있다. 뒤돌아서서 대적광전을 한눈에 담는다. 대적광전에 다가갈수록 아름다운 꽃살문에는 꽃이 활짝 핀다. 그대 앞에 처음 선 것 같이 떨린다. 佛心 깊은 나비 한 마리가 꽃살문에 붙어 金剛經을 따라 부른다. 기림사는 고요에 醉하여 있다. 대적광전의 부처를 깨우기 위해서, 처마 끝 풍경에 고인 바람이나 한 바가지 퍼서 앞마당에 뿌려야겠다. 대적광전 뒤편을 돌아보려고 하였으나, 그곳에는 빗질한 자국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아서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앞마당을 다시 둘러본다. 단층 하지 않은 전각들 때문에 마당은 더 넓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비우려고 왔으면 그리되고, 채우려고 왔으면 또 그리된다. 기림사 흙 마당도 나에게는 보물이 된다. 지나간 것을 되돌리 듯 뒤로 걸으며 기림사를 나왔다. 가끔 新羅에서는 이렇게 나의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골굴사 마애여래불좌상磨崖如來佛座像을 보았다. 가파른 곳을 잘도 올라와 바위 속에 떡하니 앉아 있으니 佛力이 얼마나 좋을까. 그런 佛力 끄트머리라도 잡아보려고 높고 험한 곳을 오르는 보살은 힘든 것이 수행이라 알고 있다.
어둠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질 때쯤, 경주 西岳同 서악서원西岳書院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관리인이 10시 이후 해야 할 일을 당부하면서, 오늘 예약한 손님은 우리뿐이라고 하고 퇴근했다. 숙박료 내고 서악서원을 하룻밤 지켜주기로 한 셈이다. 아무도 없는 이 넓은 서원에서 하룻밤이라니.... 넓은 마당의 차가워진 밤공기 때문만은 아닌, 조금 싸늘한 기운이 밀려온다.
드러누워 한참을 천장만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관리인의 부탁대로 書院 주위의 불을 끄고, 대문도 걸어 잠갔다. 삐걱하는 문소리가 긴 꼬리를 달고 어둠 속으로 숨는다. 주인인지 머슴인지 모르겠다. 어두운 마당에서 불 켜진 방을 보니 아주 예쁘다. 마루에서 불을 껐다 켰다 하며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놀이를 즐긴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상현달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가고, 별들은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당에 서서, 별빛이 뼛속에서 사리舍利로 영글도록 온몸을 풀어놓으며 新羅의 밤하늘을 생각한다.
새까맣던 밤하늘도 수천억 년이 지나니 해져 빛이 새어 들어온다. 新羅 사람들은 그것을 별빛이라 불렀다. 밤하늘 별빛이 마당에 가득 찬다. 어린 새가 창 없는 새집 안에 누워 별을 세고 있다. 나뭇가지를 오르는 벌레는 별빛에 미끄러지는 몸을 다시 추스른다. 바람이 흔드는 덩굴손 그림자에 놀라 산짐승의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별빛을 타고 토함산吐含山을 기어오른다. 석가탑 어깨 위로 무거운 별이 내려앉는다. 별빛마저 없는 밤이면, 산은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다. 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져 꽃이 된 것이라 믿듯이, 땅에서는 꽃이 하늘로 떨어져 별이 된 것이라고 醉 하여 믿기도 한다. 醉해야 믿음이 생긴다. 달이 높은 나뭇가지 뒤에서 무심한 눈으로 별을 보고 있다. 잠들지 못한 바람이 북서쪽 별 앞으로 지나간다.
새벽을 하늘에서 지낸 별들이 잠들기 위해 첨성대 남쪽 窓으로 들어간다.
(‘신라로 떠나다’ 끝. ‘신라에 머물다/떠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