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까지만 그리워할게...
아주 먼 옛날, 표류 중 지구별에 불시착한 생명체가 있었다. 고양이이다.
지구별이 너무 아름다워 불시착한 김에 소풍 온 것으로 여기며 잠시 머물 계획을 세웠다. 그 '잠시'라는 것이 수 천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머무르는 '잠시'가 되었다. 지독한 고독을 품고서 웅크리며 집요하게 자신을 고립시키는 길고양이에게 지구별에서의 야생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고립된 웅크림으로 인간의 곁에 존재하고 있다, 서로 무심한 듯하지만.
어찌 보면 고양이는 인간의 고독을 이해하고, 고독의 가장자리에 앉아 같이 나누고, 고독의 파멸에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아주 먼 우주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결코, 먼저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올 수 없는 것도 있듯이,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오래 묻어 둘 수도 없다.
아파트에 사는 길고양이 ‘'라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올해까지만 그리워할게...
2022년 봄.
아파트 숨겨진 곳에 어미 ‘꼬미’가 새끼를 4 마리 낳았다. 그중 한 아이가 '라라'이다. 어미 고양이의 새끼에 대한 모성애는 위대하다.
살아남은 '라라'의 동생은 시기가 되면 생존을 위해 어미 곁을 떠나서 그들은 스스로 살아가야 했다. 독립이다. 길고양이 새끼가 3개월 전후에 보이지 않으면 대체로 엄마로부터 독립하였다고 보면 맞다. 야생에서, 어미의 돌봄 없이 홀로서기의 시작이다. 그 시기에는 새끼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마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한번 결정하면 새끼들을 매정하게 독립시킨다. 냉혹하지만 그들만의 원칙이다.
그런데 '라라'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 '꼬미'도 구태여 '라라'만은 독립시키지 않았다. 엄마와 다르게 '라라'는 경계심이 무척 많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때는 왜 '라라'독립을 시키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 '꼬미' 엄마는 뭔가를 알고 있었는데, 집사인 나는 전혀 몰랐다.
그 후 계절이 바뀌니 '라라'는 엄마보다 덩치도 커졌다. 그래도 항상 엄마를 따라다니고, 엄마의 보호 아래서 그루밍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2023년 봄,
'꼬미'가 봄에 새끼 3 마리를 낳았는데, 2마리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아파트 화단에서 누나 '라라'와도 잘 놀았다. 밥 먹을 때 두 동생은 적극적인데, '라라'는 항상 한발 물러서 있었다. 항상 발 앞에 그릇을 밀어두면 먹었다. 그때도 '라라'는 특이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두 동생은 독립하여 아파트 윗동네에서 기존의 삼촌, 이모들 틈 속에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라라'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있었다. 이때부터 엄마 '꼬미'와 딸 '라라'를 자세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며칠 자세히 지켜보니 '라라'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되었다.
'라라'는 두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24년 여름, 5월 말~ 6월 초
며칠 동안 보이지 않든 '라라'가 아기를 데리고 왔다.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라라에게 아기가 있었던 것이다. '라라'의 첫아기였다. 경이로운 자연의 법칙이다.
회사 근처 다른 길냥이들처럼 관심을 갖고 챙겨주지는 못했는데 고맙게도 아기를 낳고, 잘 키웠구나.
처음 인간 앞에 선 만남에 엄마 뒤에 숨어서 어쩔 줄 모르는 아기, 예쁘고 귀여웠다. 아기의 상태를 보니 두 눈에 딱지가 앉아 좀 지저분해 보이지만, 건강해 보였다. 엄마가 그루밍도 해주며 아기를 잘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쁜 아기가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없으니... 내가 아기 눈을 닦아줘야겠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여 그냥 아기 고양이를 부를 때 항상 편히 부르는 ‘까꿍이’라고 불렀다)
새끼에게 젖 먹이고, 핥아서 트림시키고, 대소변은 어미가 먹는다. 어미는 종일 새끼를 위한다. 엄마 냥에게는 힘들다는 기준이 없다. 닭가슴살 하나 주면 먹지 않고 숨어있는 새끼들한테 물고 간다. '라라'도 그렇게 까꿍이를 키웠다, 여느 엄마 고양이와 다르지 않게.
고양이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몸짓으로 그들끼리 서로 소통한다. 아직은 인간과의 소통은, 서로가 원해도, 서로가 서툴다. 엄마에게 배운 것이 ‘피하라, 거리를 두라, 숨어라’가 다였다.
까꿍이는 앞으로 엄마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엄마의 언어
주변의 위험한 것들 알기... 자동차, 낯선 고양이, 사람, 다른 동물들, 구조물, 맨홀 등
영역을 표시하고 관리하는 방법
사냥하는 법
계절의 변화와 날씨 대처법
새소리, 벌레 등 소리의 구분
벌레나 개미가 지나가는 길 익히기
숨기 좋은 꽃과 나무 위치
만유인력을 뚫고 높이 뛰어오르는 법
물 찾기와 물이 있는 곳
배가 아플 때 먹는 풀
바람을 즐기는 방법
아파트 각 동의 영역과 그중 머물 수 있는 일 층 화단 탐색
집사의 냄새와 목소리
나무 타는 법과 내려오는 법
비 오는 날 할 일
천둥과 번개 시 행동요령
발톱 관리 하는 요령
눈 위를 걷는 법
시간을 헤아리는 방법
고독을 즐기는 법
고립과 절망을 거스르는 방법, 등
(인간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것들 중 배우지 못한 것은 없는가?)
엄마 '라라'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까꿍이는 그 엄마에게 어떻게 교육받을까?
세상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혼나면 왜 혼나는지 알까?
그래도 야생이니 스스로 잘 살아갈 것이다.
'까꿍이'가 엄마에게 혼나는 모습이다.
'까꿍이'는 세상이 신기하다. 꽃향기 풀냄새로 주변을 익히고, 어제보다 좀 더 멀리... 궁금하다.
엄마 '라라'는 얼마나 답답할까?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엄마 '라라'는 '까꿍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으니,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다. 아파트 안이지만, 가끔 차가 다니는 위험도 안다. '까꿍이'를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곁으로 오지도 않으니 걱정과 답답함 뿐이다.
'까꿍이'가 다가옴을 냄새로 안다.
찻길인데도 혼자 돌아다니고, 불러도 바로 오지 않는 '까꿍이'를 혼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은 종일 답답했다.
아파트 길고양이 '라라' II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