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동안거冬安居에 들까 보다.
지난 계절을 뒤돌아 본다.
지난봄은 아장아장 걸어왔고,
지난여름은 헐레벌떡 뛰어왔고,
지난가을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이제 겨울은 꿈틀꿈틀 배밀이하며 아주 느리게 지나간다. 봄을 향해 간다. 오래 걸릴 거다. 걸어 다니는 것들, 기어 다니는 것들은 겨울잠이나 실컷 자 두어라. 24 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이니 봄이 왔다는 인간의 셈법에 속지 말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는 경칩 때까지 푹 자두는 것이 좋다.
이제는 우리가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행하여야 한다.
물론, 나만의 동안거에 든다면 화두는 꼭 챙겨야 한다.
이 겨울... 나는 화두를 하나 들고 동안거에 들까 보다.
안거安居: 여름 3개월과 겨울 3개월 동안 출가한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불교제도.
하안거夏安居: 벌레들은 여름철에 성하기 때문에 모르게 밟아 죽이는 일이 허다하므로 살생계(殺生戒)를 범할까 봐 승려들은 나돌아 다니지를 않고 하안거를 한다. 여름, 더운데 돌아다니지 말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동안거冬安居: 겨울에 동안 한 곳에 머물며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이다. 한국에서는 음력 10월 15일(2025년 올해는 12월 4일) 결제해 다음 해 1월 15일 해제하며,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수행을 한다. 겨울에도 추운데 돌아다니지 말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안거는 절집에서의 하안거나 동안거 같이 거창하거나 길 필요도 없고 또, 수행한다고 한 곳에 칩거할 필요도 없다.
나는 수시로 가출하여 아무 곳에서나 화두 하나 들고 안거에 들기도 한다. 며칠이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나만의 이런 소소한 안거를 즐긴다. 지난해 동안거 때, 내 안거의 화두는 '산모퉁이 돌면 활짝 핀 매화나무, 탄식 혹은 유혹'이었다. 지금, 내 소소한 안거는 한 사흘쯤 걸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어서, 나만의 하안거나 동안거에 들 때도 있다.
참견할 수 없을 만큼 산이 꽉 차서 하안거에 든다.
참견할 수 없을 만큼 산이 비어서 동안거에 든다.
올해, 겨울 동안거
겨울. 바람이 데리고 온 겨울먼지, 쭉정이들이 겨울 무를 쑥 뽑아버린 구멍에 자리 잡고 찬비람을 피한다. 볕 좋은 날에는 그 구멍에 햇살도 대굴대굴 굴러서 미끄러져 들어와 고인다. 가끔 눈이 포근한 솜이불을 덮어 준다. 이런 세상 시선에 벗어 난 곳이라 해도 다 나름 사연도 있다.
나는 이런 겨울먼지나 쭉정이 같이 고요한 곳에서 안거 하며, 이번 화두인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 화양연화는 ‘꽃 같던 시절’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을 뜻한다. )*'를 기억해 내는 것으로 겨울을 보내려고 한다. 화두는 안 울퉁불퉁한 곳이 없는 산 같은, 안 평평한 곳이 없는 바다 같은 것을 차근차근 기억해 내는 것이다. 기억 그곳에서 나의 화양연화를 찾을 수 없다면 다른 추억이라도 뒤져야 한다.
기억이란 것은 보통 흐릿하다. 그래서 기억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기억 속에서 유독 사랑에 대한 기억은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스스로를 미화한다. 그래서 더 소중한 기억이 되는 것이다.
('화양연화'라면 지금은 안타깝게도 없어진 나라 홍콩, 그때의 홍콩 영화 '화양연화'를 떠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도 나는 첸 부인과 차우의 '화양연화'에서 못 헤어나고 있지만, 언젠가 영화 '화양연화'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
그 사람을 못 믿었다. 아니,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그 사람을 못 믿었지. 물론 그러다 보면 분명히 그 사람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것이고, 그럴 때는 낮별이 보고 싶어 독한 앉은뱅이 술을 꺼내오기도 하겠지.
결국, 나의 화양연화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아직 오지 않은 나의 화양연화를 꿈꾸기도 하겠지.
항상 그곳에 있었듯이, 낮달이 화두에 집착하는 나를 무심히 내려다본다.
질문해 본다.
동안거에 들 준비가 되었나요.
답한다.
동안거, 그 별거 있나요. 생쌀과 솔잎만으로 겨울나는 것도 아닌데.
심심하면 겨울잠 자는 다람쥐, 개구리, 꼭꼭 숨은 거머리를 찾아다니며 깨우기도 하고, 누군가가 보고 싶으면 편지 쓰면 되고, 몸이 찌뿌둥하여 힘쓰고 싶으면 겨울 언 땅에 곡괭이질이나 삽질하면 되고, 그대가 그리우면 낮술 한 잔 하고 꿈꾸면 된다.
또 스스로 질문한다.
그럴 거면 일상과 같은데 굳이 안거에 든다고 하나요.
또 스스로 답한다.
남들 보기에 뭔가 하는 거 같으니까요
화두를 들고
동안거에 든다고 자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떠나기 전, 준비한 짐을 풀어 보았다.
1회용 식량, 빵, 라면, 건빵, 과자, 믹스 커피... 많이도 준비하셨네. 어디 피난 가세요?
밑에 파란 이슬을 담은 두꺼비도 몇 병 보이네. 안거安居 동안 두꺼비 겨울잠 재우려나.
근데, 군용 담요는 왜 준비했나요? 담요 속에 화투도 한 모 있네.
안거에 필요한 것은 화투가 아니고 화두입니다.
그리고 화투로 운세 보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맞고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 이제는 자신만의 화두를 하나씩 들고 이 겨울, 스스로 동안거에 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