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0 별이 된 행운이

by 찹쌀아빠

연애를 9년 했고, 2021년 2월에 결혼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꿈도 못 꾸고,

우리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도 우리만의 분위기였다.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처음으로 아무런 일정 없이 느긋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우리는 연애 초반부터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다. 아내는 직장인이었고 나는

대학생이었던 터라 데이트는 주말에만 짧게 즐길 수 있었고

그마저도 내가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 직장 생활이바빠 주말 하루, 그것도 힘들면

2주에 한 번 정도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9년을 함께했고, 우리 부부는 연애기간 동안 부족했던 함께 있는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둘만의 추억을 신혼집에

채워가기 시작했다. 89년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건강했고 아직 젊었기에

임신과 출산의 어려움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2023년 추석이 지나고 우리는 처음으로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이 맘 때쯤 아이를 가지 자라고 서로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갓난쟁이였던

조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커진 것 같다.


엽산을 챙겨 먹고, 운동을 시작하고 배란기에 맞춰 부부관계를 가지며 곧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한 달, 또 몇 달이 지나도 임신테스트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자 다음번에는 될 거라는 확신에서 점점 임신이 안되는 걸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블로그, 카페, 영상매체등에서 임신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엽산과 먹는 영양제도

바꿔가며 조바심 내가며 이제는 시험관을 해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 부부 둘이서

살아갈 건지에 대한 고민을 아내와 이야기를 해봐야 하나 걱정만 쌓여갔다.


2024년 9월 12일.

새벽 3시나 되었을까?

안방에 불을 켜고 다급히 나를 깨우던 아내는 임신테스터기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여보, 이거 두 줄 아냐?"

"잠깐만, 어?? 두 줄 같은데??"

반쯤 감긴 눈으로 쳐다본 임신테스터기에는 그간 숱한 검사에도 보지 못했던 아주

희미하게나마 두 줄이 보였고 그때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잘못본건 아닌지 세수를 하고 와서 다시 봤을 때도 이건 두 줄이 확실해 보였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더욱 확실히 임신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아침이 되자마자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예약 없이 갔던 터라 긴 대기시간 끝에 피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곧바로 결과를

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오후쯤이나 돼야 전화로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3시.

언제 전화가 올지 서로 전화기만 빤히 쳐다보던 와중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HCG수치가 낮긴 하지만, 임신 가능성은 높네요.

몸조리 잘하시고 2주 뒤 담당의 선생님 진료받으러 오세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임신확인서는 다음번 방문 때 아기집이 보이면 바로 발급받으실 수 있어요"


20250731_210036.png 엄마 아빠의 눈에만 보이는 희미한 두줄



행운이 임신 4주 차.

아내와 떨리는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 처음 담당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임신을 확실히 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 결과, 작지만 선명한 아기집을

볼 수 있었고, 피고임이 조금 있으니 다음 주 다시 진료를 보기로 하고 원무과에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임신확인서와 작지만 소중한 우리

아이의 아기집이 찍혀있는 초음파사진을 사진으로 찍어 임신 사실을 전달드렸고,

양가 부모님들은 기다리던 임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오지랖을 부리던 나에게

아내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우리에게 찾아온 행운 같은 아이라는 뜻으로 태명을

"행운이"로 정하자고 하였고, 나는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며 뱃속에서 열심히 크고 있을

우리 행운이가 잘 클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행운이.png 행운이의 아기집과 임신확인서



행운이 임신 5주 차.

아내와 설레는 마음으로 행운이를 보기 위해 방문한 산부인과 담당의 선생님께서는

초음파를 보시며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원래 임신 5주 차 정도면 난황이 보여야 하는데,

피고임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 잘 안 보이는 거 같네요. 여기 희미한 부분이 난황 같기는 한데..

우선 다음 주 다시 방문해서 행운이 심장소리 들을 수 있도록 엄마는 물이랑 이온음료

많이 마시고, 피가 흡수가 잘되도록 최대한 누워있어 봅시다"

"아.. 피고임이 많은가요?"

"범위가 좀 넓기는 하네요, 그래도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아가 잘 클 수 있도록

아빠도 엄마 최대한 도와주고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봐요"

지난주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최대한 밝게 아내에게

괜찮을 거라 격려하며 아내가 걱정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지만, 웃지 못하는

내 입꼬리에 아내가 되려 괜찮을 거라고 오늘부터 누워서 지낼 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날밤 출근 전까지 산모 피고임등을 검색해 보며 맘카페, 블로그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엄마들의 경험을 찾아보며 마음 졸였다가, 이 정도는 다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말에

안심했다를 반복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폰을 덮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내가

최대한 침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도와주면서 행운이가

잘 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거.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까.


행운이 임신 6주 차.

"다행히 난황이 보이네요! 행운이도 보이고, 피고임은 아직 있지만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는지 볼게요"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가 심장은 일정하게 뛰고 있는데.. 심박이 조금 약하네요 78, 88, 82.

그래도 일정하게 잘 뛰고 있으니까 엄마 조금만 더 힘내서 우리 행운이 다음 주에는

예쁜 젤리곰 보러 와요"

담당의 선생님 방을 나와 입덧이 심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아내를 기다리며 그래도

한주 한 주 커가는 행운이가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하던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가 심박수가 120은 넘어야 하는데 우리 행운이 심박이 너무 느려.. 피고임도 큰 변화가 없고"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

입덧, 피로감, 먼지 알레르기등으로 코도 막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행운이에게

나쁜 영향이 갈까 봐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알레르기약도 멀리하던 아내를 그저 옆에서

응원해 주는 거 말고는 해 줄 수가 없어서 마음이 쓰라렸지만 아내가 더 힘들 거 같아 괜히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안 좋았으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을 거야,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

여보 고생하는 만큼 행운이도 엄마 뱃속에서 힘내고 있을 거야! 우리 다음 주에 예쁜 젤리곰

행운이 볼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해도 될까?"

"그럼! 우리 아긴데 엄마, 아빠 닮아서 씩씩하고 사고뭉치로 잘 클 거야"

"그래, 엄마도 힘낼게 행운아, 행운이도 엄마랑 함께 힘내자 아자아자!"

"아자아자!"

우리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행운이가 잘 클 수 있게 최선을 다하자고.


행운이 임신 7주 차.

"아.. 아기가 안 보이네요"

한참이나 초음파를 보던 담당의 선생님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번주에 분명 난황도 보이고, 행운이도 보이고,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여기, 여기 있었잖아요?"

나도 모르게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저번주 행운이가 있었던 위치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담당의 선생님은 다시 한번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확대해서 밝기를 올리자

다행히 행운이가 보였다.

"아 죄송해요, 피고임이 있어서 안보였네요. 심장소리도 들으셨다고 했죠?

오늘도 심박수 한번 볼게요"

-두근..... 두근.... 두근.... 두근

"행운이 평균 심박이 74 정도 되네요. 크기도 너무 작고, 피고임도 큰 변화가 없어요.

다음 주 한 번 더 보겠지만, 예후가 좋지는 않아요"

숨이 막혔다.

평소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아내는 내가 퇴근하고 나면 같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아내와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은

우리의 하루 일과였다.

그런 아내가 피고임이 본인 탓인듯해 임신 4주 차부터는 화장실과 식사를 제외하고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힘든 시간을 오롯이 행운이를 위해

감내해 왔는데. 굳어진 얼굴로 진료실을 나서는 내 손을 아내가 꼭 잡아주며 말했다.

"여보. 괜찮아"

"미안해,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화낸 거 같네"

"아니야, 행운이가 갑자기 안 보인다고 하셔서 그런 거잖아. 선생님도 이해하실 거야"

"미안해"

"괜찮아"

정작 위로받을 사람은 아내인데, 괜찮다며 잡아준 아내의 손에서 느껴진 온기가

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면 안 되는데, 아빠가 더 기운 내서 엄마가 걱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집에 돌아와 날씨가 더워 세수를 한고 오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한참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아직 모르잖아? 우리 아기 힘내서 다음 주에는 더 클 수도 있잖아? 아기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만약, 우리 행운이가 떠나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희망을 가지자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도 마음속 한편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불안함은 어느새

내 심장을 죄어 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붉게 충혈된 눈을 거울로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행운이 아빠, 우리 아내의 남편. 약해지지 말자"


행운이 임신 8주 차

"... 계류유산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소파술 빠르게 하시는 게 나으실 거예요. 내일 괜찮으세요?"

한참 동안이나 행운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려고 초음파 카메라를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결국 행운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내에게 물었고 아내는 담담히 대답했다.

"네, 내일 할게요"

"오늘은 힘드시겠지만 아무것도 드시면 안돼요, 내일 뵐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가는 누굴 더 닮았을까? 아들일까, 딸일까?

처음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들뜨는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어렵게 찾아온 우리 아기 행운이를 상상하며 걸었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간 엄마라서 못 먹었던 초밥, 커피, 초콜릿케이크등을 사들고 몸조리 후에는 우리 해외여행도 가자고

평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산책길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지금까지 일들이 꿈인 것처럼, 우리는 평소처럼 웃고 떠들었고 내일은 병원에 가야 하니까

일찍 자야 한다고 잠자리에 누웠다.


"흑.. 행운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잠에 들기 전 휴대폰을 쳐다보면 아내의 눈에서 조금씩 눈물이 흐르더니, 이내 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내를 안고 등을 다독이며 단지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말하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괜찮다는 말은 점점 목이 메어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고, 울다 지쳐 잠이 든 아내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에는 멈춰버린 심장을

찍은 마지막 초음파 동영상이 보였다.


소파수술 당일

오전 9시 예약 시간에 맞춰 우리 부부는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접수를 마치고, 아내는 혈압과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모든 절차는 조용히, 빠르게 흘러갔다.

수술 전,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가 있었다.
담당의 선생님은 조심스레 기기를 움직였고, 화면 속에는 너무나 작은 우리 행운이가 보였다.

“심장이 여전히 뛰지 않네요.”

그 말은 짧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지만, 가슴에 무거운 돌이 다시 한번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자궁의 입구를 넓혀주는 약을 투여받고

수술 전 대기실 겸 회복실로 이동해 수액과 항생제를 맞았다.

침대에 누운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11시. 수면마취로 진행된 수술은 15분가량 소요되었고, 아내는 다시 회복실로 옮겨져

약 2시간 동안 수액을 맞으며 안정을 취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아내 옆을 지켰다.
무언가를 말하기보단,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는 확인을 받고 나서 퇴원 준비를 하던 중,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보내줬구나...”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응.. 행운이 잘 갔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린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오랜 시간 끝에 우리에게 찾아와 준 우리 아기, 행운이

8주간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 큰 기쁨이었던 우리 행운이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떠나버린 우리 행운이

슬픔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행운이는 떠났지만, 우리에겐 그 아이를 기다리고, 사랑했던 모든 시간이 남았다.
그 소중했던 시간들을 가슴에 담은 채,

우리는 조금씩 일상을 다시 걸어가기로 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