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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성 Oct 27. 2022

미움받을 용기

책을 읽는다.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예술이고, 얻을 수 있는 조각을 다 조합해야 완성된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피에르 자네의 말이다. 이 말처럼 나는 조각난 나의 시간을 조합하고 있다. 파편화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하나로 완성해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MBSR 훈련을 받았다. 신체 기반 트라우마 치료에 참여했고 인도 요가 연수원에서 호흡조절 훈련도 받았다. 작년 겨울에는 나를 위한 글쓰기 과정에도 참여했고 동네 책방 골목 독서 회원도 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인생을 쓰는 일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 무언가 변했다 싶으면 다시 원점이었고 또 무언가 변했다 싶어 자신감이 충만하다가 또다시 좌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본다.      


무엇 때문일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구절이다. 저자는 모든 행동에는 어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의해서 스스로 행동한다고 말했다. 아니!!!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나는 두려움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적면 공포증을 선택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사람들 앞에서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두 장면이 떠오른다. 아주 어렸을 적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이불속에 머리를 쳐 받고 그분이 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서울에 살고 계시는 외삼촌 집에 놀러 갔다. 외숙모는 저녁으로 궁중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다. 난생처음 접하는 음식 앞에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그냥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불편한 공간과 처음 먹는 음식은 위장장애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날 밤 속이 불편함을 느꼈고 화장실에 가서 먹은 음식을 쏟아 내야 했는데 어른들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말하고 말 안 하고를 떠나서 그냥 화장실로 가면 되는 데 그걸 못해서 끙끙 앓다가 이불에 토하고 말았다. 이런 모습들이 대부분 나의 삶의 패턴이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적면 공포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냥 얼굴이 발그스레하다를 넘어 보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활활 타올랐다.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때는 내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이 흐릿해지면서 머릿속은 텅 비어 도저히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도전이 돼버린 지 오래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는 말한다.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은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들어 냈다고.' 그리고 '적면 공포증은 아주 쉽게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목적으로 적면 공포증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작가의 말처럼 적면 공포증을 어떻게 쉽게 고칠 수 있단 말인가.


행동은 사람의 통제 밖에 있는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도 결정되기도, 선택되기도 한다.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정 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하기 때문에, 인정 욕구를 부정하라는 말에 멈칫했다. 나는 끊임없이 인정 욕구에 길을 잃고 헤맨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그날 하루는 날아갈 것 같이 기쁘다가도 내가 원하는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껴 하루 내내 우울이라는 우물 속에서 익사해 있다. 


10대 시절을 보내고 20대를 보내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타인과의 연결된 삶을 포기한 채 나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를 이렇게 만든 부모님을 원망하다가 또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나를 혐오했다. 타인들의 인정은 필요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차단한 것 같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누구보다 인정 욕구에 메말라 있는 나를 보았다. 얼마만큼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의 허전함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 옅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젠 가슴으로 느낀다.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우리는 ‘창조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전과 환경의 산물, 그 이상이다. 우리는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삶에 매개변수로 작용하지만, 자신의 유전이나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할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삶에 있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분명 ‘무엇이 주어졌는가’에 집착한다고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 다는 것. 중요한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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